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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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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2.17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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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0월 28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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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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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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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말라기 2장 1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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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2:17 너희가 너희 말로 주를 지치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그분을 지치게 하였느냐?​ 하나니 너희가 이르기를,​ 악을 행하는 자마다 주의 눈앞에서 선한 자며 그분께서 그들을 기뻐하신다,​ 하거나 혹은 이르기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는 점에서 그리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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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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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까지 말라기에 나와있는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에 대해 살펴보고 있다. 오늘은 네번째 시간으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하는 백성의 죄”에 대해 보려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쉽게 말한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의인은 고난받으나 악인은 번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시작은 성경의 욥기에까지 올라간다. 욥은 아브라함과 동시대의 인물로 여겨지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만일 공의로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면 의로운 자는 복을 받고 악인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단정한다. 즉 ”권선징악“의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제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가?​ 욥은 당대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의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만일 사람들이 자기 의로 구원받을 수 있다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노아와 욥과 다니엘이 언급되었다(겔 14:14,20). 그런데 욥은 사람이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모든 악한 일들을 당하였다. 그의 아들들과 딸들이 한날에 생일 잔치에서 죽임을 당했고 그의 모든 재산 역시 한 날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뿐 아니라 그의 몸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병들었고 그는 아내와 그의 친구들과 주변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믿음을 잃었고 버림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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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욥의 세친구들은 악한 일들을 당한 욥에게 그가 감추고 있는 숨겨진 죄가 있을 것으로 단정했다. 그들은 욥을 위선자 취급하였고 그의 말들을 믿지 않았으며 그들의 말에는 원론적인 이야기 즉, 하나님께서는 “의인을 축복하고 악인은 저주하신다”라는 관점에서 욥을 설득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욥의 어떤 죄들도 찾아낼 수 없었으며 욥은 그들보다 더 의로운 자신의 삶에 대해 항변해야 했다. 욥에게 풀리지 않은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어떤 죄를 지었다면 이런 고통을 받는 것은 당연하나 자신에게서 어떤 죄악도 발견하지 못함에도 이런 고통이 찾아오는 이유를 알지 못하였다. 욥기 19장은 욥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장이다. 그는 자신의 이유없는 고통이 억울하다고 판단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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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반대로 대부분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에게 찾아온 고통이나 고난에 대해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원망하며 의로우신 하나님의 공의가 어디로 갔는지 주님께 반문하곤 한다. 우리는 당시 시대적 상황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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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빌론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백성은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는 하였으나 그들의 삶은 척박하고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성전은 붕괴되어 있었고 그들은 힘든 삶의 여정으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뒷전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학개와 스가랴와 같은 대언자들을 보내어 그들을 종용하여 성전은 건축되었으나 여전히 그들의 삶은 피폐하였고 그들이 기대한 하나님의 축복은 기대하여도 보일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는 이방민족들과 남을 속이는 자들은 번영하고 부하게 되는 것들을 보는 백성의 마음에는 악을 행하는 것이 오히려 수지맞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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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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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말 1:1에서 “엄중한 부담”이라 일컫고 있다. 말라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대언의 말씀을 “부담”으로 느낀 것이다. 그만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담겨있음을 보여준다. “말라기”란 이름은 그 뜻이 “나의 사자”란 뜻이다. 예전에 주의 천사에 대해 언급할 때 천사에 대한 히브리어가 “말락”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바로 말라기가 동일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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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가 하나님의 엄중한 부담을 선포할 당시 상황은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왕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오랜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유다는 어려운 중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예전과 같이 회복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하였을 때 당시 지어진 성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며 이스라엘은 예전의 영토를 회복하지도 자신의 영화도 회복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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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절에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영화를 보려고 찾아왔었지만 이제 그들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한차례 파괴되어 재건축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로 말미암아 주변 민족들에게서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따라가며 율법을 버리고 죄들을 범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징계로 이 모든 시련들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사랑하는 아버지로써 그들이 다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본국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제 주님은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주님을 사랑하여 섬기던 믿음의 조상들처럼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신실하며 이방인들의 빛으로써 걷기를 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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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여러 시련들과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죄를 범하기 시작했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범한 여섯 가지 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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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말 1:1-5)
 +  II. 하나님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함(말 1:6-2:9)
 +  III.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힘(말 2:10-16)
 +  IV.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말 2:17-3:6)
 +  V.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말 3:7-12)
 +  VI.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경멸함(말 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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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V.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말 2:​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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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2:17 너희가 너희 말로 주를 지치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그분을 지치게 하였느냐?​ 하나니 너희가 이르기를,​ 악을 행하는 자마다 주의 눈앞에서 선한 자며 그분께서 그들을 기뻐하신다,​ 하거나 혹은 이르기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하는 점에서 그리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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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희가 너희 말로 주를 지치게 하였다.” 이 말은 참으로 놀랍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아니시고 영존하시는 하나님이기에 기진하지 아니하시고 피곤하지 아니하신 분(사 40:​28)이시나 주님은 우리의 말로 인해 “피곤해 하실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떤 말에 대해 “피곤해 하시는가?​” “악을 행하는 자마다 주의 눈앞에서 선한자며 그분께서 그들을 기뻐하신다” 라고 하거나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라고 말할 때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심의 말들을 우리가 할 때 주님은 그 말들에 “지친다”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의 말도 안되는 불평을 계속해서 듣다보면 우리가 지쳐서 더 이상 듣고싶지 않은 것처럼 주님께서는 자신의 공의를 의심하는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에 대해 “지쳐”한다는 점이다. 여기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의심하는 것은 단순히 잠시 있는 불평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싫증을 드러내는 불평이 되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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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43:22-24 오 야곱아, 그러나 너는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고,​ 오 이스라엘아,​ 너는 내게 싫증을 냈느니라. 23 네가 너의 번제 헌물의 작은 가축도 내게 가져오지 아니하고 너의 희생물로 나를 존경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나는 너로 하여금 헌물로 나를 섬기게 하지 아니하고 분향하는 것으로 너를 지치게 하지 아니하였노라. 24 너는 나를 위하여 돈을 주고 향내 나는 갈대를 사지도 아니하고 네 희생물의 기름으로 나를 흡족하게 하지도 아니하였으며 오히려 나로 하여금 네 죄들을 가지고 섬기게 하고 네 불법들로 나를 지치게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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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1:12-13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주의 상은 더러워졌고 그 상의 열매 곧 그분의 먹을 것은 업신여겨도 된다, 함으로 내 이름을 더럽혔느니라. 13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또한 이르기를,​ 보라, 그 일이 얼마나 피곤한가! 하며 그 일을 향하여 코웃음을 치고 찢긴 것과 다리 저는 것과 병든 것을 가져왔느니라.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왔으니 내가 너희 손에서 이것을 받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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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피곤하며 지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했다. 주님은 그들이 내뿜는 하나님의 공의를 반문하는 불평들로인해 “지쳐”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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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어떤 점에서 그분을 지치게 하였느냐?​” 문제는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어떤 죄 가운데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우리가 어떤 점에서 그분을 지치게 하였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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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들로 말미암아 주님이 그들을 축복할 수 없는 이유를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에게로부터 받은 언약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에게 “언약”이라는 단어를 상기시키셔야만 했다. 말 3:1을 보면 주님은 “언약의 사자”를 보내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주님과 맺은 언약은 율법에 관한 것으로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모든 필요에 대해 축복하시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들은 바빌론에서 본 이방여자들을 마음에 들어해 그들의 유대인 아내를 버리고 이방신들을 섬기는 여자들을 아내로 삼았을 뿐 아니라 주께 합당치 아니한 헌물들을 드리고 있었고 말 3:5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보다 이방인들의 문화인 마법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가난한 자들과 과부와 고아들을 학대하고 타국인들에게 적절한 대우를 해주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들의 죄로인해 주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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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일 하나님께서 죄들로 더러워진 자신의 백성들을 축복한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그들의 죄들을 용인하고 용납하는 일이 되고 만다. 그들은 “공의의 하나님”을 외쳤지만 사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긍휼의 하나님”이 필요했다. 주님은 그들을 그들의 죄로 인해 멸하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긍휼 가운데 두심으로 그들이 완전히 멸망당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의 죄악은 인지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지 아니함만을 두고 주님의 공의에 반문함으로써 그분을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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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을 행하는 자마다 주의 눈앞에서 선한 자며 그분께서 그들을 기뻐하신다.” “악한 일에 대한 판결이 속히 집행되지 아니하므로 사람들의 아들들의 마음이 악을 행하려고 그들의 속에서 완전히 고정되었도다.”(전 8:11) 하나님께서 악한 일에 대한 심판을 속히 집행하시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속히 집행하지 아니함으로 인해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해 동조하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신다고 판단함으로써 사람들은 더욱 죄를 범하기로 마음에 굳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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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려고 노력하나 고난과 어려움이 끊이질 않고 반면 하나님을 알지못하는 죄인들의 삶은 번영 가운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성도들에게는 항상 돈이 궁핍함을 발견하곤 하나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은 평안해 보이고 인생을 쉽게 사는 것처럼 느껴질 때 성도들의 마음은 어딘가 모르게 이질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이 일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세움을 얻은 다윗의 찬양단을 이끌던 아삽에게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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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3:1-2 (아삽의 시) 진실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곧 마음이 깨끗한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도다. 2 그러나 나로 말하건대 내 발은 거의 지나갈 뻔하였고 내 걸음은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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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삽이 넘어질 뻔한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내가 사악한 자의 번영을 보고 어리석은 자를 부러워하였기 때문이로다.”(시 73:3) 아삽의 눈에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의 삶은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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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3:4-9 그들은 죽을 때에도 조이는 끈이 없고 오히려 힘이 강건하며 5 다른 사람들같이 고난 중에 있지도 아니하고 다른 사람들같이 재앙을 당하지도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교만이 사슬처럼 그들을 두르고 폭력이 옷처럼 그들을 감쌌도다. 7 그들의 눈은 기름져서 솟아오르고 그들이 가진 것은 마음이 원하는 것보다 더 많으며 8 그들은 부패한 자로서 학대하는 것에 관하여 악하게 말하고 거만하게 말하며 9 그들의 입은 하늘들을 대적하며 놓여 있고 그들의 혀는 땅을 활보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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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부조리를 보게 될 때에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은 하나님에 대한 원망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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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3:10-11 그러므로 그분의 백성이 여기로 돌아오매 그들이 잔에 가득한 물을 쥐어짜서 그들에게 부으며 11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아시느냐?​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지식이 있느냐?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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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것은 성도로 하여금 선하게 살고자 하는 의욕을 잃게 하며 또한 자신은 재앙을 당하고 징계당하는 일에 대해 부당하고 판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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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3:12-14 보라, 이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이로되 세상에서 형통하며 재물을 불리는도다. 13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을 무죄함 속에서 씻은 것이 참으로 헛되니 14 내가 종일토록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계를 당하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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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바로 말라기 당시의 하나님의 백성의 불평이었다. 그들이 볼 때 하나님의 백성은 고난을 받고 재앙을 당하나 사악한 자와 어리석은 자는 번영함 가운데 자기들의 손의 열매를 먹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것으로 인해 백성은 과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라고 반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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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오늘날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다”(사 5:20)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온갓 불경스럽고 추잡하며 악한 것들을 행하고 노래하는 자들은 번영하고 쉽게 돈을 벌며 인정을 받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지만 선을 행하다 오히려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선을 베푸는 것을 오히려 악한 일이라 여기게 되었다. 중국에서 살인 사건이 눈앞에서 일어나도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면 관심을 갖지 않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지만 과연 그런 일들이 한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시대의 도덕적 가치는 완전히 변해버렸다. 나에게 이로운 것이면 그것이 악해보여도 악한 것이 아닌 것이 되었다. 때로 악인의 번영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괴로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아삽도 그러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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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3:15-16 내가 만일 이르기를,​ 내가 이렇게 말하리라,​ 하면, 보소서, 내가 주의 자녀들의 세대를 향하여 죄를 지으리이다. 16 내가 이것을 알려고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너무 심한 아픔이 되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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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사악한 자들의 번영을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해볼까 하는 마음을 가지다가도 그건 주님이나 우리 자녀들앞에서 죄를 짓는거야 하고 생각하며 접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아삽도 그러한 모양이다. 과연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라고 백성들이 주님께 반문하고 있을 때 주님은 다음과 같이 응답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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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1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가 구하는 주가 갑자기 자신의 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가 기뻐하는 언약의 사자라. 보라, 그가 임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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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구절을 보면 두 명의 “사자”가 등장하는 것을 본다. 첫번째 사자는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라고 말하고 있다. 이 사자는 누구인다?​ 침례인 요한이다. 이것은 공관복음에서 동일하게 말하고 있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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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 11:10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하신 말씀이 가리키는 자가 곧 이 사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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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 1:2 대언자들의 글에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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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7:27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얼굴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예비하리라,​ 하신 말씀이 가리키는 자가 곧 이 사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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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째로 등장하는 “사자”는 누구인가?​ 그는 “언약의 사자”라 불린다. 이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그분이 누구인가?​ “너희가 구하는 주(LORD)”이시다. 즉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언약의 사자라 불리신다. 사자는 원어로 “말락”이다. 말라기와 동일한 말이다. “말락”은 천사 혹은 사자 혹은 대사로 번역되었다. 그렇다면 여기 구절은 언약의 천사로 번역되어도 문제없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의 “주의 천사”이시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해 보여준다. 그런데 “언약의 사자”이신 예수님께서 오시는 이유가 무엇인가?​ 5절에서 그 이유를 말하고 있다. “내가 심판하려고 너희에게 가까이 이르리니” 하나님의 백성이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반문할 때 주님은 “내가 직접 와서 심판하리라” 고 말씀하고 계신다. 여기 예수님의 오심인 초림과 재림이 곂쳐있음을 알 수 있다. 구약의 많은 부분이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구분하지 않고 같이 언급하고 있다. 이 구절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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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2 그러나 그가 임하는 날을 누가 견디겠느냐?​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서겠느냐?​ 그는 정련하는 자의 불과 같고 세탁하는 자의 비누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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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절의 상황은 재림의 상황을 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임하는 날을 누가 견디겠느냐?​”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초림과 재림은 나누기 힘든 부분이 있다. 주님의 오심의 목적은 “정련”과 “깨끗케 함”에 있다. 그러나 녹은 불태워 없애실 것이다. 주님이 “사자”로서 오시는 것은 의인은 고난을 받으나 악인은 번영하는 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의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은 어디 계시냐?​”에 대한 질문에 하나님의 답변이다. 먼저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성도들에 대해 그들의 구원자이시자 정련자로써 그리고 깨끗케 하시는 분으로서 오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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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엡 5:26-27 이것은 그분께서 말씀을 통해 물로 씻음으로 교회를 거룩히 구별하고 정결하게 하려 하심이요 27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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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또한 주님을 신뢰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아니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들의 죄악된 행동에 대해 불로써 태워버리시는 분으로써 오실 것이다. 주님은 심판을 늦추신 것일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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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5 내가 심판하려고 너희에게 가까이 임하리니 곧 내가 마법사와 간음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품삯으로 품꾼을 억누르고 과부와 아버지 없는 자를 학대하며 타국인을 쫓아내어 그의 권리를 빼앗고 나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자들을 대적할 신속한 증인이 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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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가까이 임하는 것이 여러분을 심판하려고 오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지금까지 주님은 그분의 때에 심판하는 것을 거두지 않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이방민족들 사이로 흩어졌으며 바빌론의 포로가 되었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심이 아니던가?​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들에게는 구원자가 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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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6 나는 주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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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 연유로 이스라엘은 소멸되지 아니하고 남은 자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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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3 그가 은을 정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의 아들들을 깨끗하게 하되 금과 은같이 그들을 깨끗하게 하여 그들이 의 안에서 주에게 헌물을 드리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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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오시면 주님은 “레위의 아들들”을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그분은 마치 은을 정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가 앉아서 불로 녹인 은에 찌꺼기가 하나도 없이 제거하시고 자신의 얼굴이 녹은 은에 그대로 나타나기까지 하실 것이다. 주님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앉아 자신의 성도들을 불로써 정결하게 하시고 마치 세탁공이 의복을 깨끗하게 하듯 그렇게 정결하게 하실 것이다. 이것은 세가지 적용이 있다. 먼저 초림을 통해 주님은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자들을 깨끗이 씻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레위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우리는 영적 희생물들을 드리는 영적 제사장이 된 것이다. 이것은 깨끗하게 된 우리가 주님께 의 안에서 헌물을 드리게 하려 함에 있다. 두 번째로 이 말씀은 재림 때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그대로 적용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주님은 대환란을 통해 믿는 유대인들을 부르시고 그들을 정결케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이제 주님을 의 가운데서 섬기도록 하실 것이다. 그렇게 되면 4절 말씀이 성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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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4 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에서와 같이 이전 시대에서와 같이 주에게 기쁨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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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께 기쁨이 되는 헌물을 드리지 못한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제사장들이 그들로 하여금 주님께 올바른 것들을 가져오도록 하며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고 율법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도록 이끌었어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주님은 “레위의 아들들”을 먼저 정결케 하신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 성전의 비둘기 파는 자들과 동전 교환 하는 자들의 상을 엎으시고 성전을 정결케 하신 이유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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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이 시대의 부조리에 대해 즉 의인은 고통을 받고 악인은 번영하는 것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 가? 주님은 영원의 관점에서 언급하고 계신다. 주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성도에게는 구원자와 그들을 정결케 하시는 분으로써 오시고 자신을 신뢰하지도 않으며 죄악에서 사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이것은 아삽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 깨달은 바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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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73:17-25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갔을 때에야 비로소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8 분명히 주께서 그들을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그들을 던지사 파멸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19 그들이 어찌 그리 순식간에 황폐하게 되었나이까! 그들이 두려움으로 완전히 소멸되었나이다. 20 오 주여, 사람이 깬 뒤에 꿈을 멸시하는 것 같이 주께서 깨시면 그들의 형상을 멸시하시리이다. 21 이와 같이 내 마음이 괴로우며 내가 내 속 중심에서 찔렸나이다. 22 내가 이같이 어리석고 무지하므로 주 앞에 짐승 같았사오나 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 24 주께서 주의 권고로 나를 인도하시고 나중에는 영광으로 나를 받아주시리니 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나이까?​ 땅에서는 주 외에 내가 사모할 자가 아무도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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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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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사라졌는가?​ 아니다. 아직 임하지 않았을 뿐이다. 주님은 그 때가 되면 각 사람이 행한대로 그대로 갚으실 것이다. 그것은 아직 임하지 않았을 뿐이다. 선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는 정죄의 부활로 나올 것이다. 영원의 관점에서 여러분은 어디에 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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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2.17.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