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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3.10
2012년 11월 4일 주일오전설교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5

부제: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

본문말씀: 말라기 3장 10절

말 3:10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되 그것을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서론

오늘은 어떤 경우에는 민감한 주제라 할 수 있는 부분이다. 많은 교회들이 말라기 3:10을 인용하여 교회 내 여러 가지 헌금을 유도하는 경우를 보아왔었다. 모든 강사들이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부흥강사들을 초청하여 부흥회를 열면 마지막 날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골메뉴는 “헌금”에 관한 것이다. 암암리에 부흥강사들은 그것을 설교하기로 마음을 맞춘 것처럼 보인다. 부흥회 자체는 나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주님께 헌신하게 인도하면서 나중에 헌금의 강요를 보는 것이다.

내 생각에 형제사랑침례교회 형제자매들은 지금까지 이 부분에 대해 잘 해왔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다 선포하는 것이 중요하므로 오늘은 “십일조와 헌금”에 대한 부분을 보고자 한다. 헌금에 대한 부분은 내가 여러분에게 강요할 것이 없다. 그것은 여러분과 하나님과 사이의 문제이다. 오늘 말씀이 바로 그 부분을 확고히 해 줄 것이다.

배경

말라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말 1:1에서 “엄중한 부담”이라 일컫고 있다. 말라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대언의 말씀을 “부담”으로 느낀 것이다. 그만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담겨있음을 보여준다. “말라기”란 이름은 그 뜻이 “나의 사자”란 뜻이다. 예전에 주의 천사에 대해 언급할 때 천사에 대한 히브리어가 “말락”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바로 말라기가 동일한 단어이다.

말라기가 하나님의 엄중한 부담을 선포할 당시 상황은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왕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오랜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유다는 어려운 중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예전과 같이 회복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하였을 때 당시 지어진 성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며 이스라엘은 예전의 영토를 회복하지도 자신의 영화도 회복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예전에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절에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영화를 보려고 찾아왔었지만 이제 그들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한차례 파괴되어 재건축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로 말미암아 주변 민족들에게서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따라가며 율법을 버리고 죄들을 범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징계로 이 모든 시련들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사랑하는 아버지로써 그들이 다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본국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제 주님은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주님을 사랑하여 섬기던 믿음의 조상들처럼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신실하며 이방인들의 빛으로써 걷기를 원하셨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여러 시련들과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죄를 범하기 시작했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범한 여섯 가지 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I.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말 1:1-5)
II. 하나님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함(말 1:6-2:9)
III.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힘(말 2:10-16)
IV.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말 2:17-3:6)
V.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말 3:7-12)
VI.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경멸함(말 3:13-4:6)

V.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말 3:7-12)

말 3:7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심지어 너희 조상들의 날들로부터 너희가 내 규례들을 버리고 떠나 그것들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돌아가리이까? 하였도다.

하나님께서 6절에서 “나는 주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성도들에 대해 변치 아니한다. 그분이 우리를 대하는 방식이 바뀔 수 있으나 그분의 사랑은 여전하시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있을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변치 아니하는 사랑으로 인해 그들의 죄들에도 불구하고 없어지지 아니한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심지어 너희 조상들의 날들로부터 너희가 내 규례들을 버리고 떠나 그것들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함이나 의로움이나 혹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했기 때문에 자신들이 보존되었을거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규례를 버리고 지키지 않은 문제는 이미 오래되었음을 말씀하신다. 즉 그들이 보존된 것은 그들의 선함이나 순종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만일 우리의 죄들의 깊이를 보자면 우리 모두는 멸망하여도 합당한 자들이다. 오직 하나님의 공로와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는 멸망에서 건짐을 얻은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에게 했던 동일한 명령을 하고 계신다. “내게로 돌아오라.”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의 가는 길에서 돌이켜 오라고 말씀하신다. 죄의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은 회개를 의미한다. 즉,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계신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혹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돌아가리이까? 하였도다.” 그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돌아가야 하는지를 모르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의지적으로 무지 가운데 있거나 혹은 배우지 못하여 무지 가운데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말 3:8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잘못된 부분에 대해 이렇게 지적하신다.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하겠느냐?” 하나님은 두려우신 분이시며 또한 그분은 모든 사람들의 왕이시며 생사의 문제를 쥐고 있는 분이시다. 강도들도 감히 청와대에 들어가 무언가를 훔칠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쉬운 일도 아닐 뿐더러 두려운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소유하는 일에 두려움을 갖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강도질한다면 그것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위라고 생각할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처벌할 것이란 생각이 우리 마음을 두렵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의 귀를 놀라게 하는 말을 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강도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떤 점에서 주의 것을 강도질하였나이까? 하나니” 주님은 왜 강도질이라 부르는가? 하나님께 속한 것을 부당하게 소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두 가지를 지적하신다. “너희가 십일조와 헌물에서 강도질하였느니라.” 이것은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것들이다. 즉 이 두 가지는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런데 십일조와 헌물만 주님의 것인가?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의 창조주이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시 50:7-12 오 내 백성아, 들을지어다. 내가 말하리라. 오 이스라엘아, 내가 너를 향하여 증언하리라. 나는 하나님 곧 네 하나님이로다. 8 내가 네 희생물이나 번제 헌물로 인하여 너를 책망하지 아니하리니 그것들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어 왔도다. 9 내가 네 집에서 수소나 네 우리에서 숫염소를 취하지 아니하리니 10 숲의 모든 짐승과 천 개의 작은 산 위의 가축이 다 내 것이니라. 11 산의 모든 날짐승도 내가 알며 들의 들짐승들도 내 것이로다. 12 가령 내가 주린다 할지라도 네게 말하지 아니하리니 세상과 거기의 충만한 것이 내 것이로다.

세상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님의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생명까지 소유하신 분이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책망하였다.

고전 4:7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이제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그것을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우리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 그런데 주님은 이 모든 것이 내 것이므로 다 내놓으라고 명령하지 아니하신다. 오히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소유한 것들을 관리하도록 맡기셨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에 대해 청지기로 하나님 앞에 있는 것이다.

벧전 4:10-11 각 사람이 선물을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로서 서로 그 선물을 써서 섬기라. 11 만일 누구든지 말하려거든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는 것 같이 하고 누구든지 섬기려거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하는 것 같이 그 일을 하라. 이것은 모든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분께 찬양과 통치가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주님께서 대부분을 우리의 관리에 맡기셨지만 “십일조와 헌물들”에 대해서는 다르게 적용하신다. 그것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관리에 맡기지 않으셨다. 그것들은 주님께서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시는 부분이다. 그것들은 주님께서 “내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십일조란 십분의 일을 말한다. 십일조를 드린다는 것은 우리가 소유한 것의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수입이나 재산에서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주님의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나머지 90 퍼센트는 우리의 관리에 맡기셨다.

헌물이란 우리가 자원하여 주님께 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런 점에서 헌물에는 어느 정도라는 개념이나 퍼센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모세의 율법을 보면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드리는 체계를 자세히 마련하셨음을 보게된다.

신 14:22-29 너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네 씨의 모든 소출에서 반드시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23 주 네 하나님 앞에서 곧 그분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먹고 또 네 소 떼와 양과 염소 떼의 처음 난 것을 먹으며 이로써 주 네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4 주 네 하나님께서 네게 복을 주셨을 때에 주 네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그 길이 너무 길어 네가 그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 25 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손에 들고 주 네 하나님께서 택하실 곳으로 가서 26 네 혼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 돈으로 사되 소나 양이나 포도즙이나 독주 등 네 혼이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사고 거기서 주 네 하나님 앞에서 너와 네 집안이 함께 먹고 기뻐할지니라. 27 네 성문 안에 있는 레위 사람은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는 자니 너는 그를 저버리지 말지니라. 28 너는 삼 년이 끝날 때에 그 해 소출의 십일조를 다 가져다가 네 성문 안에 저축하여 29 (너와 함께 나누는 몫이나 상속 재산이 없는) 레위 사람과 네 성문 안에 거하는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와 과부가 와서 먹고 배부르게 할지니라.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명하신 목적과 방법에 대해 배우게 된다. 먼저 십일조를 하나님께서 명하신 이유는 “이로써 주 네 하나님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셨으나 주님은 특별히 그 중 십분의 일을 자신에게 드릴 것을 명령하셨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소유가 되심을 배우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이 십일조를 가지고 하나님께 오면 그 십일조의 일부를 그와 그의 가족과 레위인이 즐기고 먹게 된다. 그리고 나머지 십일조는 레위인들의 몫이 된다.

레위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에게서 십일조를 받으면 그들도 십일조를 제사장들에게 주게 된다.

민 18:24-29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십일조 곧 그들이 주께 거제 헌물로 드리는 것을 내가 레위 사람들에게 주어 상속하게 하였나니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서 상속 재산을 갖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25 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6 레위 사람들에게 이같이 말하고 그들에게 이르라.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취해 너희에게 상속 재산으로 준 십일조를 너희가 그들로부터 취할 때에 그 십일조의 십분의 일을 그것의 거제 헌물로 주를 위하여 드릴지니라. 27 내가 너희의 이 거제 헌물을 너희를 위해 타작마당의 곡식과 포도즙 틀의 충만한 것같이 여기리니 28 이와 같이 너희는 또한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받는 너희의 모든 십일조에서 주께 거제 헌물을 드리고 그 중에서 주의 거제 헌물을 제사장 아론에게 주되 29 너희의 모든 예물 중에서 가장 좋은 것 즉 그 중에서 거룩한 부분을 취하여 주의 모든 거제 헌물로 드릴지니라.

19절에서 그것은 “소금 언약”이라 불린다.

매 삼년마다 그 해 걷히는 십일조는 특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 십일조는 십일조를 드리는 자가 거하는 성문 안에 모은 다음 레위인들과 나그네와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의 몫이 되게 하였다. 이 십일조에 대해 주님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주셨다. “그리하면 주 네 하나님께서 네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서 네게 복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라는 명령을 약속과 함께 주셨다. 이것은 십계명의 다섯 번째 명령처럼 약속과 함께 주어졌다. 매 삼년마다 십일조를 드리기 때문에 그 해를 “십일조의 해” 혹은 십일조를 드리는 해라 불렸다(신 26:12).

이 십일조에 대해 유대 랍비들은 다음과 같이 적용했다고 한다. 1.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을 위해 2. 가족의 교제를 위한 식사를 위해 3. 매 삼년마다 땅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을 위해. 그러나 이렇게 적용한다면 십분의 일이 아니라 거의 십 분의 삼에 육박하게 된다. 이것은 성경을 잘못 나누게 된 적용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십일조라 할 수 없다. 모든 것은 한 십일조를 다양한 사용을 위해 적용될 뿐이다. 매 삼년마다 십일조라고 해서 따로 십일조를 더 거두는 것이 아니라 매해마다 드리는 십일조 중 삼년 째에는 자신과 가족이 교제하며 즐기기보다 가난한 자들을 더 배려하기 위해 사용될 뿐이다. 즉 이년동안은 십일조를 성소로 가져가지만 삼년 째에는 성소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거주하는 곳의 레위인들과 가난한 자들과 타국인들을 위해 베푸는 것이다.

또한 십일조는 각자가 드리며 또한 드리는 자의 양심에 따른 것이었다. 신 14:22을 보면 “너는 해마다 밭에서 나는 네 씨의 모든 소출에서 반드시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라고 되어 있다. “너”라고 주님은 각자에게 명령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십일조는 각 가정 단위로 행해졌을 것이다. 또한 “반드시”라고 번역된 단어를 보라. 영어로는 “truly”로 되어 있다. 즉 “너는 진실되게 십일조를 드리라”라고 명령하고 계신다. 주님은 드리는 자가 자신의 양심에 합당하게 드릴 것을 명령하셨다. (흠정역 최신판은 “진실하게”로 교정되었다.)

십일조의 일차적 사용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일을 맡고 있는 레위인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유업을 따로 주지 않으셨다. 두 번째로 십일조는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 사용되었다. 드려지는 십일조의 일부가 매 삼년마다 그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의가 널리 퍼지게 하기 위함에 있다(시 112:9; 고후 9:9). 세번째로 십일조는 “주 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울 것”으로 주어졌기 때문에 “영적”인 목적이 같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말 3:9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으니 이는 너희 곧 이 온 민족이 내 것을 강도질하였기 때문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이 십일조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어려운 삶으로 인해 십분의 일이라도 생계에 보태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십계명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 십계명은 경배의 목적과 영적인 목적이 두 가지 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두 가지를 소홀이 한 것이다.

먼저 경배의 목적을 보자. 말라기와 같은 시대적 상황에 놓였던 느헤미야서를 보라.

느 12:44-47 그때에 내가 몇 사람을 임명하여 재물과 헌물과 첫 열매와 십일조를 둘 방들을 관리하게 하고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을 위해 율법이 정해 준 몫을 도시들의 밭에서 거두어 그 방들에 두게 하였으니 이는 섬기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로 인하여 유다가 기뻐하였기 때문이더라. 45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이 다윗과 그의 아들 솔로몬의 명령대로 자기들의 하나님을 섬기는 직무와 정결례의 직무를 지켰으니 46 이는 옛날에 다윗과 아삽 시대에 노래하는 자들의 우두머리들이 있었고 또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의 노래들이 있었기 때문이더라. 47 스룹바벨 시대와 느헤미야 시대에는 온 이스라엘이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의 몫을 주되 날마다 각 사람의 몫을 주었으며 또 그들이 거룩한 것들을 거룩히 구별하여 레위 사람들에게 주고 레위 사람들은 그것들을 또 거룩히 구별하여 아론 자손에게 주었더라.

그런데 느헤미야가 없는동안에 이스라엘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느 13:4-13 이 일이 있기 전에 우리 하나님의 집의 방을 감독하는 제사장 엘리아십이 도비야와 연합하였으므로 5 그를 위해 큰 방 하나를 예비하였는데 그 방은 예전에 그들이 음식 헌물과 유향과 기구들과 또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과 문지기들에게 주도록 명령한 곡식과 새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와 또 제사장들의 헌물을 두던 곳이더라. 6 그러나 이 모든 기간에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나니 바빌론 왕 아닥사스다의 제삼십이년에 내가 왕에게 갔다가 며칠 뒤에 왕에게서 휴가를 얻어 7 예루살렘에 와서 엘리아십이 도비야를 위해 하나님의 집 뜰에 방을 예비한 그 악한 일을 알게 되었노라. 8 그 일로 인해 내가 심히 근심하였으므로 도비야의 모든 집안 물건을 그 방 밖으로 내던지고 9 그때에 명령하여 그들이 그 방을 정결하게 하였으며 내가 하나님의 집의 기구들과 음식 헌물과 유향을 다시 거기로 가져다 놓았노라. 10 내가 또 그들이 레위 사람들의 몫을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을 알게 되었으니 이는 일을 하던 레위 사람들과 노래하는 자들이 각각 자기 밭으로 도망하였기 때문이더라. 11 그때에 내가 치리자들을 꾸짖고 이르기를, 어찌하여 하나님의 집을 내버려 두었느냐? 하고 곧 그들을 함께 모아 다시 그들의 처소에 세웠더니 12 그때에 온 유다가 곡식과 새 포도즙과 기름의 십일조를 가져다가 보고에 들이므로 13 내가 제사장 셀레미야와 서기관 사독과 레위 사람들 중에서 브다야를 보고의 재무관으로 삼고 또 맛다니야의 손자요, 삭굴의 아들인 하난을 그들 다음가는 자로 삼았으니 그들은 신실한 자로 인정받았더라. 그들의 직무는 자기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이었더라.

하나님의 집을 관리하는 제사장 엘리야십이 도비야와 연합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백성이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보관하던 방을 비우고 거기를 도비야를 위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레위 사람들의 몫을 제대로 주지 않음으로 레위인들이 각자 생계를 위해 흩어졌다.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들이 제대로 되지 않아서 백성들이 십일조를 가져오지 않았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아 레위인들이 생계를 먼저 살펴야하는 상황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일이 소홀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두번째로 십일조는 하나님의 의가 전파되도록 함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아버지 없는 자들과 과부들의 하나님으로 말씀하셨다.

시 68:5 아버지 없는 자들의 아버지이시며 과부들의 재판장이신 분은 자신의 거룩한 거처에 계신 하나님이시로다.

십일조를 통해 주님은 이것이 실행되도록 하신 것이다.

세번째로 십일조는 영적인 목적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를 항상 배우게 함에 있다. 그것은 우리의 믿음의 성장을 위한 것이다. 백성들은 생계에 쓰기도 빠듯한데 어떻게 십일조를 드릴 수 있느냐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백성들의 믿음을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소유하시며 내가 소유한 모든 것 역시 그분의 것이라는 것을 실제적으로 보이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실 것이란 믿음이 실제적으로 자라는 것이 바로 십일조를 통해서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는 일을 맡고 있는 레위인들이 그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였고 또한 십일조를 의지해야할 만큼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을 소홀이 했을 뿐 아니라 또한 스스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주님께 나아가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주님의 명령에 불순종함으로써 스스로 저주 받게 된 것이다. 주님은 십일조를 거룩한 것으로 부르셨다.

말 3:10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로 가져와 내 집에 먹을 것이 있게 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너희를 위해 하늘의 창들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되 그것을 받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시험하라고 말씀하시는 유일한 부분을 여기서 볼 수 있다. 주님은 모든 십일조를 주님께 가져와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축복하는지 안하는지를 시험해보라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앞서 보았듯이 십일조는 약속과 함께 주어진 명령이라는 점을 생각나게 한다.

기독교내에서 십일조에 대해 의견이 갈라지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어떤 사람들은 십일조는 율법의 명령이며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므로 십일조의 명령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십일조의 영적인 면을 소홀이 보고 있는 것이다. 먼저 십일조는 율법 이전에 존재해 왔다. 창세기 14장을 보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람을 살렘왕 멜기세덱이 빵과 포도즙을 가지고 맞이하였는데 그는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 아브람은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주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것은 십일조는 율법이전에 있었다는 것 말고 십일조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이라는 점이다. 아브라함이 22절에서 한 말을 주의해서 보라. “내가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곧 주께 내 손을 드노니” 이 표현은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했던 말과 같다. “하늘과 땅의 소유주 되시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사람 아브람에게 복이 있을지어다.” 십일조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소유주가 되심을 인정”하는 경배의 행위이다.

두 번째로 등장하는 것은 야곱이 벧엘에서 꿈을 통해 하나님을 대면하고 그곳의 이름을 하나님의 집 즉 벧엘로 짓고 맹세한 말에 있다. “내가 평안히 내 아버지 집으로 되돌아오게 하시면 주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시고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되며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창 28:21-22) 여기도 십일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경배함에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십일조는 물질적 목적으로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십일조는 경배의 목적과 하나님의 의의 전파의 목적과 우리의 믿음을 위한 영적인 목적으로 주어졌다.

신약에 와서 우리는 십일조에 대한 직접적인 명령이 있지 않다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성경은 그와 유사한 명령을 우리에게 주었다. 먼저 알 것은 주님께 드리는 자의 마음의 태도이다. 주님은 십일조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눅 11:42 그러나 바리새인들아, 너희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온갖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넘어가는도다. 너희가 마땅히 이것들도 행하였어야 하거니와 다른 것도 행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하느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헌물은 바른 마음을 가지고 드려져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화가 될 것이다. 또한 율법에서 십일조를 명령한 것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 드린 십일조의 원리를 따르고 있다는 점이다. 바울은 이 점을 히브리서 7장에서 언급하였다.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이전에도 하나님께서 높이셨다.

그렇다면 신약에서 말하는 드림의 원리에 대해 보자. 고린도전서 16장이 이 부분에 대해 명확하게 말한다.

고전 16:1-3 이제 성도들을 위한 모금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의 교회들에 지시한 바와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2 주의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 대로 자기 곁에 모아 두어 내가 갈 때에 모으는 일이 없게 하라. 3 내가 가면 너희가 너희의 편지로 인정하는 자들이 누구든지 내가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보내어 너희의 너그러운 선물을 가지고 가게 하리라.

드림은 계획적이고(자기 곁에 모아두어)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대로 되어야 하며 모으는 때가 있으며(주의 첫날) 각자가 하는 것(너희 각 사람)임을 볼 수 있다. 신약의 드림은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하신대로 드리는 것이라면 이것은 일정한 비율이 있음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비율은 최소 십분의 일이 되지 않겠는가?

고린도후서 9장 역시 신약의 드림의 원리에 대해 말한다.

고후 9:7-15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 하나님께서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것은 너희가 항상 모든 일에서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선한 일을 풍성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9 (이것은 기록된바, 그가 널리 재물을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지속되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10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제공하시는 분께서 이제 너희 양식으로 빵도 제공하시고 너희가 뿌린 씨도 번성하게 하시며 너희의 의의 열매도 늘어나게 하시리니) 11 너희가 모든 일에서 부요하게 되어 온갖 후한 선물을 넘치게 하면 그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느니라. 12 이 섬김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제공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인하여 넘쳤느니라. 13 이 직무의 실행을 통해 너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시인하고 복종하며 또 그들과 모든 사람들에게 너그러이 나누어 주었으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14 또 그들이 너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로 인하여 직접 너희를 위해 기도함으로 너희를 사모하느니라. 15 이루 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로 인하여 그분께 감사하노라.

신약의 드림은 마찬가지로 계획적이어야 하며(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각자가 하는 것이며(저마다) 또한 관대해야 하며(마지못해 하거나) 자유롭게 드려야 하며(억지로 하지 말지니) 즐거운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또한 신약의 드림은 성도들을 섬기며(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한 목적) 섬김의 직무라 불리며 복음을 위한 것이며(복음을 시인하고 복종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또한 여기에 약속도 같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씨 뿌리는 자에게 씨를 제공하시는 분께서 이제 너희 양식으로 빵도 제공하시고 너희가 뿌린 씨도 번성하게 하시며 너희의 의의 열매도 늘어나게 하시리니)” 이 약속은 구약의 십일조와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그분을 인정하게 하려함에 있다. “너희가 모든 일에서 부요하게 되어 온갖 후한 선물을 넘치게 하면 그들이 우리를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되느니라.” 그런데 이것이 말라기 3:12에서 말하는 바와 동일하다.

말 3:12 너희가 심히 기쁜 땅이 되므로 모든 민족들이 너희를 복 받은 자라 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고린도전서 9장을 보면 드림은 사역자들을 위한 것임을 발견한다.

고전 9:7-14 어느 때고 누가 자기 비용을 들여 전쟁에 나가느냐? 누가 포도원을 만들고 그것의 열매를 먹지 아니하느냐? 누가 양 떼를 먹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아니하느냐? 8 내가 사람으로서 이것들을 말하느냐? 율법도 같은 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 모세의 율법에, 너는 곡식을 밟는 소의 입에 마개를 씌우지 말라, 하고 기록되었나니 하나님께서 소들을 위해 염려하시느냐? 10 아니면 전적으로 우리를 위해 말씀하시느냐? 틀림없이 이것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나니 밭을 가는 자는 소망 중에 갈며 소망 중에 타작하는 자는 자기의 소망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하니라. 11 우리가 너희에게 영적인 것들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들을 거둔다 해도 그것이 큰일이냐? 12 다른 이들이 너희에 대한 이 권리에 참여하거든 하물며 우리는 어떠하겠느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참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로막지 아니하려 함이라. 13 거룩한 것들에 관하여 섬기는 자들이 성전에 속한 것들로 사는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제단에서 섬기는 자들이 제단과 함께 헌물에 참여하는 자들임을 알지 못하느냐? 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을 선포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 것을 정하셨느니라.

이것이 보여주는 것은 구약의 십일조와 헌물과 신약의 드림의 목적은 경배의 목적과 하나님의 의의 전파의 목적과 우리의 믿음을 위한 영적인 목적에서 모두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구약의 십일조는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나는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다. 오히려 신약의 드림은 그 이상이다.

말 3:11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먹어 삼키는 자를 꾸짖으리니 그가 너희 땅의 열매를 멸하지 못하리라. 또 너희 포도나무가 때가 이르기 전에 자기 열매를 밭에 떨어뜨리지 아니하리니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십일조에 순종하면 주님은 그들이 수고의 열매를 제대로 거두도록 축복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그들의 드림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 제 기능을 하게하며 또한 가난한 자들을 도움으로써 하나님의 의가 널리 퍼지게 함에 있다. 그 일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주님은 그들을 축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것을 그분께 드리는 일을 주저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없는 삶과 같아 더욱 어려우며 마치 구멍 난 주머니에 채워 넣으려는 것과 같게 됨을 보게 될 것이다. 돈을 모르려 하나 모이지 않고 병원비로 갖가지 세금으로 차량을 수리하는 비용 등으로 빠져 나갈 뿐이다.

결론

오늘 말씀을 통해 구약의 십일조와 헌물이나 신약의 드림의 원칙에 있어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부분에 있어 소홀이 하고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셨던 도전의 말씀을 기억하자.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축복하는지 안하는지 시험해보라고 하셨다.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하기를 기도하고자 한다.

말3.10.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