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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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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3.17-18 [2017-06-20 09:04]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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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1월 11일 주일 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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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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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말씀:​ 말라기 3장 17-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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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17-18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을 나의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의 친아들을 아끼는 것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18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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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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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교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세속화되어 세상의 어떤 모임과도 차이가 드러나지 않는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교회안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는 없어지고 서로 선생이 되려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섬기고 경배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라 사교의 형식으로 변해가고 있으며, 세상의 문화 특히 음악을 받아들임으로써 진리의 하나님을 찾기보다는 감성의 신을 섬기며,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점점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같아 보인다. ​
 +
 +오히려 기독교 안에도 보면 교만한 사악한 자들은 번영하여 복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려는 사람들보다 사람들을 이용하고 속이려는 사람들이 더 번영하고 잘 사는 모습을 보면서 신실하게 주님을 섬겨온 성도들은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하나님을 정직하게 섬기는 것이 헛되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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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우리의 복됨의 기준이 어쩌면 물질적인 부분에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의 혜택을 맛보는 사람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모습이 말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백성 이스라엘을 보면서 하시는 말씀과 같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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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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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는 자신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두고 말 1:1에서 “엄중한 부담”이라 일컫고 있다. 말라기는 자기에게 주어진 대언의 말씀을 “부담”으로 느낀 것이다. 그만큼 이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슬픔과 괴로움이 담겨있음을 보여준다. “말라기”란 이름은 그 뜻이 “나의 사자”란 뜻이다. 예전에 주의 천사에 대해 언급할 때 천사에 대한 히브리어가 “말락”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바로 말라기가 동일한 단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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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가 하나님의 엄중한 부담을 선포할 당시 상황은 바빌론의 느브갓네살왕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고 오랜동안 포로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유다는 어려운 중에 하나님의 집 성전을 건축하고 느헤미야의 지도아래 예루살렘 성벽과 성문을 완공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예전과 같이 회복되지 못했다. 그들의 눈에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비교하였을 때 당시 지어진 성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으며 이스라엘은 예전의 영토를 회복하지도 자신의 영화도 회복하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들은 여전히 다른 나라들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
 +예전에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시절에 주변의 이방 민족들은 이스라엘의 영화를 보려고 찾아왔었지만 이제 그들의 예루살렘과 성전은 한차례 파괴되어 재건축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일로 말미암아 주변 민족들에게서 그들은 자기들의 신앙과 그들이 믿는 하나님에 대한 조롱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민족들의 신들을 따라가며 율법을 버리고 죄들을 범하던 그들에게 하나님의 큰 징계로 이 모든 시련들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고 사랑하는 아버지로써 그들이 다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도록 그들을 본국으로 부르신 것이다. 이제 주님은 그들이 현재의 어려움과 난관에도 불구하고 예전에 주님을 사랑하여 섬기던 믿음의 조상들처럼 그들이 율법을 준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신실하며 이방인들의 빛으로써 걷기를 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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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들에게 주어진 여러 시련들과 어려움으로 인해 점차적으로 죄를 범하기 시작했다. 말라기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범한 여섯 가지 죄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  I.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말 1:1-5)
 +  II. 하나님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함(말 1:6-2:9)
 +  III.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힘(말 2:10-16)
 +  IV.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말 2:17-3:6)
 +  V.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말 3:7-12)
 +  VI.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경멸함(말 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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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경멸함(말 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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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13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완악한 말들로 나를 대적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무슨 말을 그렇게 많이 하여 주를 대적하였나이까?​ 하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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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로 “완악한”이라 번역된 단어의 영어는 “stout”이란 단어다. 오늘날 이 단어의 의미는 “뚱뚱한,​ 당당한, 독한”이런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1611년 영어 흠정역성경이 번역될 당시는 “교만한,​ 거만한, 오만한, 맹렬한” 이란 뜻이 우선적으로 사용되었다. 사람이 뚱뚱하면 거만하고 오만한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뚱뚱한”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고 지금은 그 의미가 지배적으로 사용되고 원래의 의미인 “교만한,​ 거만한, 오만한”이란 의미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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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종 아이들은 자기 뜻대로 하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부모가 무엇인가를 지시하거나 명령하게 되면 아이들은 곧장 말대꾸를 하곤한다. 그런데 이 말대꾸에는 아이들의 격한 감정이 그대로 실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이들은 자기들의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먼저 부모에게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아이들은 멀리 보지 못하며 순간적인 충동에 더 사로잡히기 쉽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러하곤 한다. 하나님의 명령과 그분의 뜻에 백성들은 믿음으로 순종하기보다 말대꾸를 먼저하곤 한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완악한 말들로 나를 대적하였다”고 지적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은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자신의 죄의 깊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 보인 태도가 잘못되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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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14 너희가 이르기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니 우리가 만군의 주 앞에서 그분의 규례를 지키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걸은 것이 무슨 유익이 되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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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헛되다”고 생각하는데 있었다. 주님은 백성이 자신을 섬기고 경배함에 있어 그들이 보여주는 태도로 인해 슬퍼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섬기나 보상을 바라는 마음을 갖곤 한다. 그런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보상하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에서 부르시는 상을 바라고 푯대를 향하여 나아간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을 삐뚤어지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종종 우리는 즉각적인 보상을 바라거나 혹은 물질적인 보상을 바란다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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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보상하시기도 하지만 그분의 보상하시는 때는 그분의 때에 맞추어져 있다. 우리가 주님을 신실하게 섬긴 댓가로 주님은 우리의 앞길을 축복하기시기도 하며 물질적으로 축복하시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의 보상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때는 아직 일렀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 온전한 보상을 예비하고 계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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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이 세상에서 우리가 받는 하나님의 축복이 꼭 물질적이지만 않다. 오히려 영적인 축복을 우리는 더 많이 누린다. 주님은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도록 인도하고 또 우리가 주님을 더 잘 섬기도록 하시며 또한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축복하신다. 그것이 포도나무에 달린 가지에 대해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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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5:1-2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니 2 내 안에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모든 가지는 그분께서 제거하시고 열매를 맺는 모든 가지는 깨끗하게 하사 그것이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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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매를 맺는 많은 부분이 우리의 성품과 연관이 있음을 갈라디아서 5장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갈 5:22-23)로 우리 안에서 역사하는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자신이 변화되는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한 자들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의 성도들을 향한 기도에는 열매를 맺는 크리스천들이 되도록 기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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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 구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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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 1:10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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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바라는 열매는 우리의 속사람이 변화되며,​ 우리가 하나님께 입술의 열매를 드리며, 화평케 하는 자들이 드리는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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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2:11 이제 어떤 징계도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아니하고 슬프게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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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는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를 깨끗케 하심으로 열매를 맺게 하시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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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 13:15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곧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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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감사는 우리 입술이 맺는 열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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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 3:18 의의 열매는 화평케 하는 자들의 화평 속에서 뿌려졌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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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 상산수훈에서 팔복을 말씀하실 때 “화평케 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이들이라 불릴 것이기 때문이요”라고 하셨다. 우리는 어떻게 화평케 하는 자들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함으로써 하나님과 원수였던 그들이 이제 하나님과 화해함으로써 그들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도록 한다. 그것은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평케 하며 또한 그것은 사람들을 의롭게 만들기 때문에 의의 열매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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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종종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영적인 축복보다 물질적 축복을 더 바라며 그것을 얻지 못한 경우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그분을 섬기는 일에 싫증을 내기 시작한다. 주님을 섬기는 일은 그냥 내가 마지못해 하는 일과 같은 일상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고는 있으나 거기에는 나의 마음이 담겨있지 아니한 것이다. 여러분이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섰을 때 여러분의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있겐 하라. 주님은 자신의 백성이 자신을 섬기는 일에 마음이 없이 행해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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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즉각적인 물질적 축복을 바라는 하나님의 백성은 쉽게 낙심할 것이다. 말라기 당시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우리가 만군의 주 앞에서 그분의 규례를 지키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걸은 것이 무슨 유익이 되리요?​”라고 주님을 섬기는 것을 하챦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을 경배하는 일이 유익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원망의 말대꾸를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완악한 말로 주님께 대적”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심판하시는 주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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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15 지금 우리는 교만한 자를 행복하다 하고 참으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 세워지며 참으로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들도 구출을 받았다, 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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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명 기독교 내에서도 거만한 사람들이 더 만족해 보이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높임을 받고 인정을 받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교회가 세속화되거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일을 멈추게 되면 그 다음에 보이는 것은 육신적인 일들이 높임을 받게 된다. 말라기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번영하는 사악한 자들을 부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주님을 섬기는 것처럼 보이는 생색만 내며 또한 물질적으로 번영하여 만족해하며 마음이 이 땅에 있는 일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을 볼 때 혹은 번영하는 사악한 자들을 볼 때 여러분의 마음역시 끌려가지 않도록 주의하라. 바울 역시 그러한 자들을 두고 경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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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 3:17-21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따르는 자가 되고 또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 같이 그렇게 걷는 자들을 주목하라. 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적이 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많은 사람들 곧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걷느니라. 19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이요 그들의 하나님은 그들의 배요 그들의 영광은 그들의 수치스런 일에 있고 그들은 땅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20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런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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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다. 무슨 말인가? 우리의 몸은 여기 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저 하늘의 시민으로써 살아가고 있다. 여러분은 현재 저 하늘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활방식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걸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빌 1:27) 이것이 바울이 빌 1:27에서 말한 바다. 빌 1:27의 “행실”과 빌 3:21의 “생활 방식”은 그리스어나 영어 모두 동일한 단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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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즐거움으로 주를 섬기라. 그것이 시편기자가 우리에게 권고하는 바이다. “즐거움으로 주를 섬기고 노래하면서 그분 앞에 나아갈지어다.”(시 100:2) 왜 그러한가?​ 주님은 성도들이 자신을 섬기는 일이 헛되지 않으며 반드시 보상을 받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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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 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는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을 넘치게 하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너희가 아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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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3:16 그때에 주를 두려워한 자들이 서로 자주 말하매 주께서 귀를 기울여 그것을 들으시고 주를 두려워한 자들과 자신의 이름을 생각한 자들을 위하여 자기 앞에서 기념 책을 기록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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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 때에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다 불평하는 자는 아니었다. 그 중에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이름을 생각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특징을 두고 성경은 무어라 하는가? “그때에 주를 두려워한 자들이 서로 자주 말하매” 그들은 서로 자주 교제를 통해 서로를 격려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님께서는 또한 그들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들으셨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이름을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고 말씀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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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은 이처럼 자신을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요 4: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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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영과 진리로 그분을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우리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며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이 집회를 소홀이 하지 말라. 주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묵상하는 개인의 경배의 시간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 주님은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주님은 영과 진리로 주님을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주님은 그러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시며 또한 주님은 그들의 이름을 자기 앞에 기념 책에 기록하셨다.
 +
 +**말 3:17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보석들을 만드는 그 날에 그들을 나의 소유로 삼을 것이요, 또 사람이 자기를 섬기는 자기의 친아들을 아끼는 것 같이 내가 그들을 아끼리니**
 +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두려워하며 그분의 이름을 생각하는 자들을 자신의 소유로 삼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은 그들을 “자기를 섬기는 자기의 친아들을 아끼는 것 같이” 그들을 아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날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때는 주님께서 “자신의 보석들을 만드는” 날이다. 분명 때가 악하므로 하나님을 진실되게 섬기는 자들은 낙심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기도 하나 분명한 점은 하나님의 심판이 드러나는 그 날에 주님은 그들을 높이시며 아끼실 것이라는 점이다. 주님은 자신을 섬기는 자들을 아신다.
 +
 +하나님께서 그분의 보석을 만드시는 때는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이다. 그 날에 모든 크리스천은 하나님앞에 서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날에 주님을 진실되게 경배하며 섬기던 자들이 드러날 것이다.
 +
 +**말 3:18 그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
 +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어떤 일들이 드러날 것인가?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우리는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
 +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내 백성에게 거룩한 것과 더러운 것의 차이를 가르치고 그들로 하여금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을 분별하게” 가르치도록 명령하셨다(겔 44:23). 그러나 말라기 당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의 영적 수준은 백성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으며 그로인해 이스라엘의 영적 수준은 상당히 어두웠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드려야할 헌물이 거룩한 것인지 더러운 것인지 분별하고 부정한 것인지 정결한 것이지를 분별하여 하나님께 바른 헌물을 드리는 것을 배워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제사장에게서 바른 가르침을 받지 못한 까닭에 주님께 병들고 부정하며 합당치 아니한 것들을 주님께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가볍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의 모습이 이와 동일하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참된 영적 분별력을 가르치지 아니함으로 사람들은 롹음악과 같은 더러운 음악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며 또한 하나님을 두려워함 가운데 경배해야 할 때에 댄스나 사교클럽으로 만들며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나님께 돌리기만 하면 무엇이든 좋은 것으로 여기며 사악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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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 어떤 교회의 전도지가 마치 소개팅 전도지 비슷하게 만들어져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었다. 그 교회는 목적하는 바는 원래 그 뒷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데 있다고 변명했지만 내가 볼 때 이 교회는 무엇이 악한지 여전히 알지 못하는 것 같다. 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올바른 분별력을 배우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심판석에서 큰 댓가를 치르고 배우게 될 것이다. 그 날에 하나님의 백성은 “의로운 자와 사악한 자를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게 될 것이다. 그날에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심판석에 서지 못한 사람들이 실상은 크리스천이 아니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이루었지만 실상은 사악한 돈을 탐내어 걸은 거짓 교사였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날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던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를 배우게 될 것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참된 분별력을 진작에 갖지 못한 일로 후회할 것인가! 분별의 가치를 모른다면 잠언이 “분별”에 대해 무어라 말하는지를 눈여겨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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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 1:4 단순한 자에게 민감함을 주고 젊은 자에게 지식과 분별을 주기 위한 것이니
 +잠 2:11 분별이 너를 보존하며 명철이 너를 보호하여
 +잠 3:21 내 아들아, 그것들이 네 눈에서 떠나지 말게 하고 건전한 지혜와 분별을 지킬지어다.
 +잠 5:2 분별을 중시하고 네 입술이 지식을 간직하게 하라.
 +잠 8:12 나 지혜는 분별과 함께 거하며 재치 있는 창안물들에 대한 지식을 찾아내나니
 +
 +그 날에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의 이름을 생각하던 자들에 대해 주님은 그들을 보석처럼 가치있게 하실 것이다. ​
 +
 +**말 4:1 보라, 화덕같이 불태우는 날이 임하나니 참으로 교만한 자와 악하게 행하는 자가 다 지푸라기가 되리라. 다가오는 그 날이 그들을 불태우고 그들에게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
 +구약에서 그리스도의 심판석과 주의 날은 하나로 연계되어 나온다. 사실 그리스도의 심판석은 하나님의 심판의 시작일 뿐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시작되기 때문이다. 말 4:1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천년왕국을 세우기 위해 이 땅에 오실 때 일어날 심판을 말한다. 그 날은 불로써 심판할 것이다. ​
 +
 +살후 1:8-9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타오르는 불로 징벌하실 때에 그리하시리라. 9 그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로다.
 +
 +**말 4:2 그러나 내 이름을 두려워하는 너희에게는 의의 해가 자기 날개들 안에 병 고치는 능력을 가지고 떠오르리니 너희가 나아가서 외양간의 송아지같이 자라리라.**
 +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두 가지 속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과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에 대한 구원과 보상으로 오신다.
 +
 +여기 “의의 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다. 구약에서 종종 태양은 하나님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에 와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적으로 말할 때 “새벽별” 혹은 “샛별”을 사용한다.
 +
 +계 22:16 나 예수는 내 천사를 보내어 교회들 안에서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언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후손이요 빛나는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
 +하나님께서는 재림을 통해 자신의 성도들에게 다음을 약속하셨다:​
 +
 +1. 너희가 나아갈 것이다. 하나님의 성도들은 자유롭게 될 것이다. 이것은 외양간의 송아지라는 표현에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태양이 떠오르기 전이라면 지금은 밤이다. 밤에 송아지들은 자유롭지 못하고 외양간안에 갖힌다. 그러나 태양이 떠오르고 낮이 되면 그들은 자유롭게 풀장에 나아갈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은 밤에 외양간에 갖혀 속박을 받는 모습과 같다. 그러나 주님께서 오시면 우리는 자유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크리스천인 우리는 더이상 “육신”의 속박에서 있지 않게 될 것이다.
 +
 +2. 너희가 자랄 것이다. 성도는 이제 하나님 안에서 번영하고 강하게 될 것이다. 성도들이 바라는 물질적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
 +3. 너희가 밟을 것이다(3절). 성도는 하나님의 승리를 함께 누릴 것이다. ​
 +
 +**말 4:3 또 너희가 사악한 자들을 밟으리니 내가 이 일을 행하는 날에 그들이 너희 발바닥 밑에서 재가 되리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라.**
 +
 +요엘서 2:1-11을 읽어보라. ​
 +
 +**말 4: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모세의 율법을 법규와 법도와 함께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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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라기의 시대적 상황은 의의 태양이 떠오르기 전인 밤이었다. 그 때는 영적으로 암흑이였다. 이제 400년이 지나 의의 태양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오셨을 때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요르단 건너편 바닷길 옆 이방인들의 갈릴리여,​ 어둠 속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지역과 사망의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솟아올랐도다.”(마 4:15-16). 주님은 자신을 두고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다.(요 9:5,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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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암흑기 동안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에게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라고 명령하셨다. 만일 그들이 모세의 율법에 순종하면 그들은 복을 받고 또한 주님이 보내실 메시야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은 영적으로 밤의 시점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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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 13:11-12 또한 때를 알거니와 지금이 우리가 잠에서 깨어야 할 바로 그때이니 이는 지금 우리의 구원이 우리가 믿었을 때보다 더 가까이 있기 때문이라. 12 밤이 많이 지나고 낮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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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조심해야 할 것인가? 주님은 우리에게 동일하게 자신의 말씀을 맡기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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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 20:32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 유업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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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 1:3 이 대언의 말씀들을 읽는 자와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그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때가 가깝기 때문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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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4:5 보라,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대언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말 4:6 그가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며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여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치지 아니하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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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또한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만일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려 할진대 와야 할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마 11:​14)라고 하셨다. 그것은 침례자 요한을 두고 한 말씀이셨다. 그런데 문제는 침례자 요한은 자신을 두고 자신은 “엘리야”가 아니라고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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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1:21-23 그들이 또 그에게 묻되, 그러면 무엇이냐?​ 네가 엘리야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아니라, 하매 또 묻되, 그러면 네가 그 대언자냐?​ 하니 그가 대답하되,​ 아니라, 하거늘 22 이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누구냐? 우리를 보낸 사람들에게 우리가 대답하게 하라. 너는 네 자신을 가리켜 누구라고 하느냐? 하니 23 그가 이르되, 나는 대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 같이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다,​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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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이 곂쳐있음을 보여준다. 사실 침례자 요한은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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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17 그가 또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그분보다 앞서 가서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고 불순종하는 자를 의인의 지혜로 돌아오게 하며 주를 위하여 예비된 한 백성을 준비하리라,​ 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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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17은 말 4:6의 대언의 성취임을 알 수 있다. 다만 차이는 침례자 요한은 엘리야의 영과 권능으로 온 것이다. 그렇다면 침례자 요한은 말라기 4:​5절에서 말하는 “엘리야”인가?​ 엄밀히 말하면 “아니다” 왜 그러한가?​ 주님은 크고 두려운 주의 날이 이르기 전 “엘리야”를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 아직 그 날은 임하지 않았다. 성경을 가르치는 많은 주석가들은 계시록 11장에 등장하는 두 증인 중 하나가 “엘리야”일 것이라고 말한다. 다른 하나는 “모세”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사실 모세와 엘리야는 예수님과 함께 변화산에서 나타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충분히 두 증인이 되기에 합당한 자들이다. 또한 계시록 11장에서 등장하는 두 증인은 크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 이전에 보냄을 받으며 그들의 목적은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함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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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엘리야가 오면 그는 “아버지들의 마음을 자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며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들에게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오늘날 가정이 바로 세워져야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가정을 통해 우리는 섬김과 순종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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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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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까지 말라기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 여섯 가지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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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함(말 1:1-5)
 + II. 하나님의 이름을 치욕스럽게 함(말 1:6-2:9)
 + III. 하나님의 언약을 더럽힘(말 2:10-16)
 + IV.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반문함(말 2:17-3:6)
 + V. 하나님의 창고를 도둑질함(말 3:7-12)
 + VI.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경멸함(말 3: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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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그 죄들은 비단 말라기 당시의 죄들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하나님의 백성의 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주님이 오셔서 심판으로 책망하기 앞서 분별력을 가지고 주님을 바르게 섬기기를 원하신다. 주님은 자신을 찾는 자들과 섬기는 자들을 반드시 보상하시는 분이시다. 즐거움을 가지고 주를 섬기자.
  
말3.17-18.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