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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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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137.1-4 [2020-07-26 12:36]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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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7월 26일 주일오전설교==
  
 +======바빌론 안의 하나님의 자녀들======
 +
 +본문 말씀: 시편 137편 1-4절
 +
 +=====서론=====
 +
 +잠시 로마서를 내려놓고 시편 말씀을 보자. 같이 볼 말씀은 시편 137편이다. 시편은 원래 “찬송”을 위해 작성되었다. 따라서 “노래”인 셈이다. 이 시편 혹은 이 찬송시는 하나님의 집에서 작성되고 불려진 것들 중에서 가장 슬픈 노래들 중 하나일 것이다.
 +
 +이 시를 읽어보면 이 시의 저자는 전쟁의 포로라는 것을 깨닫는다. 저자가 이 시를 작성한 시기는 성도들이 바빌론에 있을 때이다. 바빌론에 있던 성도들은 또한 속박 가운데 놓인 신자들이었다. 자유의 아름다운 향기를 정말 즐거워하던 자들이 이제 노예의 더럽고 역겨운 냄새가 그들의 코를 무디게 만드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
 +이제 그들은 축복을 즐기기보다 그들은 짐을 견뎌내야 했다. 풍성하던 것들이 메마르게 되었으며 행복은 쓰라림으로 변하였고 즐거움은 마음의 낙담으로 변하였다.
 +
 +이들이 처한 배경을 이해하려면 이스라엘 자손이 바빌론 사람들에의해 포로로 끌려갔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 이유는 그들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사악함 때문이었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타락하였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하던 것들이 무너지도록 허락하셨고 이방 민족들이 들어와서 이스라엘 자손을 무릎꿇게 만들도록 허락하심으로써 그들의 교만이 깨어지고 그들이 회개에 이르게 하였다.
 +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상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바빌론은 언제나 메마름으로 인도하며 바빌론은 언제나 쓰라림으로 인도하며 바빌론은 언제나 낙담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것이 바빌론에게서 받게 될 것들이다. 바빌론에서 행복한 유일한 사람들은 바빌론 사람들이다. 바로 이 말이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친다.
 +
 +성경에서 바빌론은 모든 불법으로 가득한 세상을 상징한다. 계시록 17-18장에서 바빌론의 멸망을 노래할 때에 바빌론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기억해보자. 바빌론은 “마귀들의 처소가 되고 모든 더러운 영의 요새가 되며 모든 부정하고 가증한 새들의 집이 되었도다”(계 18:2) 따라서 바빌론은 모든 우상으로 가득한 세상을 상징하며 모든 부정함으로 가득한 세상을 상징한다.
 +
 +바빌론의 이름은 “혼란”을 뜻한다.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세상에서 하나가 되려는 사람들의 시도에 하나님께서 그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하심으로써 붙여진 이름이다. 그런데 바빌론에 있던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마음 만은 시온에 있었다. 그들은 울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시온을 기억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 속에서 시온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
 +시온은 예루살렘에 대한 다른 이름이었다. 예루살렘은 “화평의 도시”란 뜻이다. 한 때 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도시에서 살았었다. 그 때는 그들이 거룩하였기에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었으며,​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었기에 그들은 행복하였다. 그들이 서로와도 좋은 관계 가운데 있었기에 그들은 건강하였다.
 +
 +성경에 두 개의 큰 도시들이 있는데 이 둘은 전적으로 서로 반대되면서 서로 반대 방향에 놓여 마치 자석의 남과 북이 끌어당기듯이 서로를 끌어당긴다. 한쪽은 지옥의 도시인 바빌론이 있으며 다른 한쪽은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놓여있다. 바빌론에 사악함의 자리가 있고 예루살렘에 거룩함의 근원이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이 시온에서 바빌론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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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도시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포로로 사로잡혀 온 자들과 전쟁의 승리자들이다. 포로들은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을 대표한다. 반면 그들을 끌고온 자들은 이 세상의 자녀들인 죄인들을 대표한다. 이것이 바빌론에 있는 신자들을 묘사한다. 포로 가운데 놓인 크리스천들을 묘사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나 신학적으로 그들이 가진 괴로움 즉 부담을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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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피할 수 없는 슬픔이 존재한다(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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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에서 거기에 앉아 참으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2 우리가 그것의 한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들에 우리의 하프들을 걸었나니**”(시 13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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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담의 짙은 구름이 하나님의 자녀들 머리 위에 걸쳐 있어 한 때 그들의 삶속에서 밝게 빛나던 기쁨의 빛을 완전히 가리고 있다. 그들이 슬퍼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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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 그들 마음에 있는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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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바빌론의 강변에서 거기에 앉아 ... 울었도다.”(1절) 그들이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진 첫 날부터 그들은 전적으로 비참하였다. 잃어버린 것과 구원받는 것에는 어마어마한 차이가 존재한다. 사실 잃어버린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 모두 죄를 범할 수 있다. 사실을 더 말하자면 잃어버린 사람과 구원받은 사람은 죄를 범할 것이다. 하지만 차이가 존재하는데 그 둘 중 오직 하나만 죄를 범하는 것을 즐길 수 있다. 죄를 범하는 것은 하나님의 참된 자녀의 눈에 언제나 눈물을 가져올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바빌론으로 가는 것을 허락하실 것이지만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거기서 머무는 것을 즐기도록 두지는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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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하나님의 백성이 낙심한 마음을 갖게 된 것은 그들이 있게된 장소 때문이 아니라 처음부터 거기에 있게 된 까닭 때문이었다. 그들이 거기에 있게된 연유가 무엇인가?​ 예레미야 25:​1-11에서 말하는 슬픈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라. “¶ 그러므로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들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9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북쪽의 모든 가족과 내 종 바빌론 왕 느부갓레살을 취하고 그들을 데려다가 이 땅과 그것의 거주민들과 사방의 이 모든 민족들을 치게 하며 그들을 진멸하여 그들로 하여금 놀랄 일과 비웃음거리가 되게 하고 영원한 폐허가 되게 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10 또 내가 그들로부터 환희의 소리와 기쁨의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 소리와 등불 빛을 제거하리라. 11 그리하여 이 온 땅은 황폐한 곳이 되고 놀랄 일이 되며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빌론 왕을 섬기리라.”(렘 25: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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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 가지를 주셨다. 주님은 그들에게 율법(Law)을 주셨으며 그들에게 거할 땅(Land)을 주셨고 또한 그들이 경배하고 섬길 주님(Lord)을 주셨다. 하지만 그들은 그 땅을 더럽히고 율법을 더럽혔으며 주님을 부정하였다. 그들이 이렇게 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징계하셨는데 바로 “내 종 바빌론 왕 느브갓레살”(렘 25:9)을 이용하여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구부러진 막대기로 사납게 때릴 수 있으시다. 하나님게서는 이방 군대를 지배하고 이교도의 땅에 살며 이교도의 법들을 가르치고 이방 신들을 섬기는 이방 왕을 들어 자신의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여 자신의 백성을 벌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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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이들은 이렇게 생각할수도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그들을 사랑하셨다면 그런 일들을 행하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아니다. 정반대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에 그런 일을 하신 것이다. 렘 24:​5-7에서 이렇게 말한다.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복을 주려고 이곳에서 갈대아 사람들의 땅으로 보낸 자들 곧 유다에서 포로로 끌려간 자들을 이 좋은 무화과들같이 인정하리니 6 내가 내 눈을 그들에게 고정하여 복을 주며 그들을 다시 이 땅으로 데려와 그들을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그들을 심고 뽑지 아니하리라. 7 또 내가 그들에게 나를 아는 마음과 내가 {주} 인 줄 아는 마음을 주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들이 자기들의 온 마음으로 내게 돌아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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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가진 부모라면 징계가 절대 즐거움이 되지 못함을 안다. 하지만 때로 징계는 의무가 된다. 부모가 그 의무를 집행하는 것은 그 결과의 끝이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즐거움이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도 이것이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는 것을 원한다면 우리가 죄를 짓는 것도 허용하시지만,​ 그분께서 우리를 정말 사랑하시기에 우리가 죄를 즐기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시며 그것을 없애도록 이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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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 본향에 대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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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유수자들(exiles)은 거기서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1절) 여기서 시온은 하나님의 거룩한 산이자 하나님의 본향인 예루살렘을 대표한다. 시온은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를 대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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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마음은 무거웠다. 그들의 하프는 나무에 걸려있다. “우리가 그것의 한가운데 있는 버드나무들에 우리의 하프들을 걸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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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울고 있는 버드나무의 그늘에 앉아 울고 있었다. 그들의 생각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방황하고 있었다. “화평의 도시”에서 들어가고 나오며 하나님의 화평한 임재를 느낄 수 있었던 때를 회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바빌론에 있으며 그들의 부모로부터 떨어졌고 적들에게 둘려쌓여 있으며 자기들의 패배로 마음이 슬픔으로 가득 차 있고 두려움으로 구속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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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즐거움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살아있는 관계에서 오는 기쁨을 전혀 체험하지 못했다. “그분의 임재 안에 즐거움이 충만히 있다.”(시 16:11)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나 그분과 교제 가운데 있지 못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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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귀처럼 살아가는 소위 “크리스천들”이 있다. 죄 안에 살며 지옥의 시민들로 하나님의 일들에 전혀 열심을 보이지 않으며 거룩한 삶이나 성별된 삶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다. 그들은 전혀 울지도 부르짖지도 않는다. 그들은 전혀 방해받지도 않으며 자기 죄로 인해 낙심해본 적도 없지만 자신이 구원받았다고 입술로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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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소위 크리스천들이라 불리나 죄 가운데 살면서 전혀 눈물을 흘리지 않는 자들이 많은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그들이 시온에 대한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전혀 시온에 가본 적이 없다. 그들은 처음부터 구원받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기억할 수 없다. 하나님과 동행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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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처음부터 그들이 교회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나갔으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그들이 우리에게 속하였더라면 분명히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리라. 그러나 그들이 나간 것은 그들이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음을 나타내려 함이니라.”(요일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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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는 건물 이상이다. 교회는 몸인 유기체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건물에 속하는 것과 몸의 일부에 속하는 것은 어마한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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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leech)는 내 몸에 자신을 붙여서 살아갈 수 있지만 절대 내 몸의 일부가 될 수 없다. 교회 안에는 영적인 “이”가 존재한다. 자신들을 건물에 붙여서 거기서 오는 혜택과 축복들을 최대한 빨아먹는다. 하지만 피가 없으면 이는 다른 몸을 찾듯이 그들도 다른 건물을 찾는다. 그들은 절대 몸의 일부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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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된 성도가 절대로 바빌론에서 행복할 수 없는 이유를 아는가? 그것은 일단 여러분이 예수님을 맛보았다면 여러분은 절대로 이 세상이 주는 양식으로는 만족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시온의 영광의 달콤함을 맛보았던 이 소중한 백성이 이제 바빌론의 죄악의 쓰라림을 맛보아야만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들이 어떤 생각 가운데 있을지 충분히 상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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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견딜 수 없는 조롱이 있다(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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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기서 우리를 포로로 끌어간 자들이 우리에게 노래를 요구하며 우리를 피폐하게 한 자들이 우리에게 희락을 요구하여 이르기를,​ 우리를 위해 시온의 노래들 중의 하나를 노래하라,​ 하였도다.**”(시 1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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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죄는 언제나 속박만이 아니라 그 이상을 가져온다. 죄는 치욕을 가져온다. 이 세상은 크리스천이 자신의 입장을 붙드는 한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엎드러져 넘어지면 그를 신문의 처음 지면에 둘 것이다. 세상은 크리스천이 넘어지는 것을 보는 걸 즐거워한다. 그들의 모토는 “그들이 더 커지면 그들이 넘어지기 더 어렵지만 우리는 그것을 더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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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여러분의 마음에 놀라움을 주지 않기를 바란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 것을 사랑하였으리라. 그러나 너희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내가 세상에서 너희를 택하였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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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은 넘어진 크리스천들을 소재로 자기들의 축포를 올리기를 좋아한다. 여러분은 신문이 타락한 교회의 목사 이야기를 싣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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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 스윈들(Chuck Swindoll)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백성이 공개적으로 죄를 범하고 그 필연적인 결과를 어쩔 수 없이 겪게 될 때에 기독교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자들은 더 높이 서서 더 크게 외친다. 신자들이 타협하여 불장난하다 타버리게 될 때 모든 사탄의 군대는 춤을 추고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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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에서 영적으로 슈퍼스타였으나 넘어졌던 한 사람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삼손이다. 그의 이야기를 기억하자면,​ 그는 유대인으로 총명한 청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백성의 용사였다. 하지만 그는 넘어졌다. 그는 자기 죄로 덫에 걸렸다. 그가 그렇게 했을 때 그의 원수들이 그의 눈을 빼어 그를 속박하고 여자들이 하는 일을 하도록 두었으며 삼손이 자신의 원수갚기 전 그들이 그에게 요구했던 마지막 일은 재판관기 16:25에 기록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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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마음이 즐거울 때에 그들이 이르되, 삼손을 불러 그가 우리를 위해 재주를 부리게 하자, 하고 감옥 집에서 삼손을 불러내매 그가 그들을 위해 재주를 부리니라. 그들이 기둥들 사이에 그를 세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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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손이 그들을 위하여 수행할 때에 그들이 얼마나 그를 놀리고 조롱하였을지를 상상해보라. 특히 그가 섬겨왔던 위대하신 하나님을 조롱하였을 때 그의 마음이 얼마나 상심하였을지를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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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빌론에 놓인 뒤로 미끄러진 성도의 큰 비극은 그가 자기 하나님께 부끄러움과 치욕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신다면 예수님의 이름에 치욕을 가져다 주는 것보다 오늘 죽음을 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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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밤 데이트를 나간 한 십대 소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녀와 그녀의 남자친구는 다른 쌍과 함께 더블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그들 중 하나가 술과 마약과 모든 불법 행위를 하는 파티에 가자고 제안하였다. 이 젊은 여성은 주님을 사랑하던 밝은 크리스천이었으며 그녀는 “아니요,​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만일 그렇게 하려면 절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라고 말했다. 그 청년들 중 하나가 “뭐가 문젠데? 아빠가 혼낼까봐 두렵니?​” 라고 말했고 그녀는 “아니, 난 아빠의 마음에 상처를 줄까 염려하는거야.”라고 말했다.
 +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을 사랑한다면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의 최고급 상표를 얻게 된 것이다. 크리스천이 죄로 넘어지게 되면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그 죄의 진흙과 진창과 더러움 속에 끌고 가서 자기의 소중한 구주를 믿음이 없는 세상의 조롱을 받도록 둔 것이다. 우리는 죄를 어떤 값을 치러서라도 피해야 할 영적 AIDS처럼 대해야 한다.
 +
 +=====III. 표현할 수 없는 노래가 있다(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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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어찌 낯선 땅에서 {주}의 노래를 부르리요?​**”(시 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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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전에 그들이 찬송하던 노래가 이제 그들의 목구멍에 들러붙은 이유는 이제 그들이 낯선 땅에 있기 때문이었다. 오직 자유로운 자들만이 노래할 수 있다. 속박으로부터 구출받은 자들만이 노래할 수 있다. 다윗은 시 32:7에서 “ 주는 나의 은신처시오니 주께서 고난에서 나를 보존하시고 구출의 노래들로 나를 에워싸시리이다. 셀라.” 라고 말했다.
 +
 +하나님의 찬송들은 구원의 찬송들이다. 성경에서 처음으로 찬송이 어디서 나오는지 아는가? 그것은 출애굽기 15장에서 나온다. 그것은 모세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것은 홍해 바다를 횡단하던 사건이 있다. 이 백성은 이집트에서 약 400년동안 속박 가운데 있었다. 이집트는 죄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 백성이 이집트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을 때에, 그들이 자기들의 죄로부터 구속되었을 때에 그들은 노래하였다.
 +
 +성도에게서 그의 노래를 훔칠 유일한 것이 있다. 슬픔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슬픔은 여러분에게서 노래를 빼앗지 못한다. 가장 암울한 밤에서조차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에 노래를 주신다. 성경은 이사야 30:29에서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거룩한 의식을 지키는 밤에 행하는 것처럼 노래할 것이며 또 사람이 피리를 불면서 가되 {주}의 산으로 들어가 이스라엘의 [능하신 이]에게로 갈 때처럼 마음속으로 즐거워하리라.”
 +
 +누군가는 고통이 노래를 앗아갈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고통도 성도에게서 그의 찬송을 앗아가지는 못한다. 바울과 실라는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들은 지치고 배고프며 죽음을 직면하였다. 하지만 성경은 말하기를 그들이 찬송하였고 온 집이 흔들렸다.
 +
 +성도에게서 그의 찬양을 앗아갈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죄이다. 그리고 여러분의 찬송을 앗아갈 수 있는 유일한 종류의 죄는 그냥 죄이다. 우리가 바빌론에 있게 된 뒤로 미끌어진 신자라면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하프를 내려놓고 마음을 바로 잡는 것(감찰)이다.
 +
 +노래하는 것은 물리적인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은 영적인 힘의 문제이다. 성령으로 충만한 징표들 중 하나는 마음에 찬송이 있을 것이다. 바울은 엡 5:18에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한 후 곧 이렇게 말한다. “시와 찬송가와 영적 노래로 너희 자신에게 말하며 너희 마음속에서 [주]께 노래하고 선율을 만들며”(엡 5:19) 주님 앞에서 내 자신이 깨끗하다는 것을 아는 것 만큼이나 우리의 마음에 찬송을 주고 우리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하고 걸음에 리듬을 주는 것은 없다. 모든 죄가 고백되어 모든 죄가 용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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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J. 고든(Gordon)은 수년전에 살았던 위대한 설교자였다. 어느 오후에 잠시 걷고자 밖에 나갔다가 더러운 얼굴을 하고 맨발을 한 작은 소년이 녹슨 새장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보았다. ​
 +
 +그 새장에는 참새 몇 마리가 있었다. 고든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에 그 작은 소년을 멈추게 하고는 말했다. “그 새들을 어디서 얻었니?​” 소년은 말했다. “덫을 놔서 잡았어요.” 그가 말했다. “그걸로 뭐하려고?​” 소년은 말했다. “몰라요. 갖고 놀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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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든은 말했다. “그럼 그걸로 어떻게 놀건데?​” 소년은 말했다. “아마도 몇 마리 죽일거에요.” 고든은 말했다. “그럼 나한테 팔을래?​” 작은 소년이 말했다. “아저씨,​ 이 새들을 원하지 않을 거에요. 이 새들은 아저씨나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되요. 이것들은 들에서 사는 단지 작은 참새들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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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든은 말했다. “이것들이 뭔지 알아. 너가 팔 의향이 있는지 물은거지.” 소년은 말했다. “그럼 얼마를 주실건데요?​” 고든은 말했다. “2달러를 줄까?” 소년은 말했다. “아저씨 미친거 아니에요?​” 그는 말했다. “아니야,​ 진심이야. 2달러 줄게” 소년은 말했다. “아저씨 2달러에 새들하고 새장하고 줄수 있어요.” 고든은 말했다. “고마워,​ 아이야, 고마워.”
 +
 +그 위대한 목사였던 A.J. 고든은 겁먹은 참새들로 가득한 그 새장을 받고는 그 작은 소년이 다 떠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 다음 아무도 그를 볼 수 없는 오솔길로 걸어가서 겁먹은 참새들이 있는 녹슨 새장의 문을 열어주고는 그 새장의 바닥을 두드렸다. 고든의 말로는, 그 작은 참새들이 하나 하나씩 그 녹슨 새장의 열린 문의 횃대로 와서그 작은 날개를 펴고 멀리 날아갔다고 한다.
 +
 +고든은 이 새들이 더 높이 더 높이 하늘로 원을 지으며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갑자기 하나씩 짹짹거리며 그들은 노래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고든은 마치 그들이 한 노래 “구속받았네,​ 구속받았네,​ 구속받았네”라고 노래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
 +=====결론=====
 +
 +모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언제든지 노래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구속받았고 바르게 되었으며 주님 앞에서 깨끗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어디에도 뒤로 미끌어진 성도가 그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뒤로 미끌어져 넘어질 수 있지만 그 상태로 살 필요가 없으며 그 상태로 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를 주신 것은 단지 우리를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느날 우리를 죄의 임재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우리를 죄의 권능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것을 포함한다. 하프를 내려놓고 우리의 마음을 바로 잡은 후 우리의 혼에 예수님께서 노래를 주시도록 하자.
시137.1-4.txt · 마지막 수정: 2020-07-26 12:36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