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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0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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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60_2 [2020-05-30 19:42]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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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5월 24일 주일오전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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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심과 그 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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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말씀: 시편 60편 1-1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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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은 여러 굴곡으로 나타나듯이 크리스천의 믿음의 삶 역시 그러한 면이 있다. 높은 산 위에서 내려보는 때가 있다면 낮은 골짜기에서 목말라 하고 포기할 것 같은 모습을 보이는 것 역시 존재한다. 이 시를 보면 전체적으로 “낙심”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시의 저자는 낙심한 상황에서 어떻게 회복하게 되었는지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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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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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의 배경은 “그가 아람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울 때에 요압이 돌아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을 쳐서 만 이천 명을 죽”인 때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의 배경으로는 삼하 8장과 역대기상 18장이 될 것이다. 겉보기로 이 두 장을 읽을 때 우리는 다윗이 동쪽지역에서 큰 승리를 거두어 시리아와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과 소바와 에돔을 굴복케 하여 그들이 다윗을 섬기게 된 역사를 보게 된다. 그런데 60편의 내용은 그 전쟁에서 어떤 일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 장을 비교하면서 전체적으로 읽되 특히 삼하 8:11-14과 대상 18:11-13을 비교하면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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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왕이 그것들도 주께 봉헌하되 자기가 정복한 모든 민족들에게서 취하여 봉헌한 은과 금 12 곧 시리아와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에게서 취한 것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취한 노략물과 함께 봉헌하니라. 13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시리아 사람 만 팔천 명을 치고 돌아올 때에 이름을 떨치니라.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두루 수비대를 두니 에돔의 모든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주께서 그를 보존하시니라.**”(삼하 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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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왕이 그것들도 주께 봉헌하되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들과 아말렉 등 이 모든 민족에게서 자기가 가져온 은과 금과 함께 봉헌하니라. 12 또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족속 만 팔천 명을 죽이니라. 13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매 온 에돔 족속이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주께서 이같이 그를 보존하시니라.**”(대상 18: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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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부분의 차이는 특히 소금 골짜기에서 다윗이 누구를 대상으로 큰 승리를 가져왔는지에 있다. 사무엘하는 “시리아”를 언급하고 역대기상은 “에돔”을 언급한다. 즉 시리아와 에돔은 연합군을 형성했을 것이다. 부제를 보면 “그가 아람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싸울 때에”라고 되어 있다. 즉 다윗은 아람나하라임과 아람소바와 전쟁을 치루고 있는 중이었다. “아람나하라임”은 “두 개의 강의 아람”(Aram of the two rivers)을 뜻하는데 두 개의 강이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강을 의미한다. 따라서 “아람”은 시리아나 메소포타미아를 언급한다. 시리아어를 “아람어”라고 하는데도 이유가 있다. “아람소바”는 “아람의 소바”이므로 다윗은 소바와 연합군을 형성한 시리아인들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음을 보여준다. 소바는 하맛(하마스,​ Hamath)와 다마스커스 중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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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합이 이끄는 군대가 동쪽으로 이동하여 시리아인들과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이 시리아인들과 에돔과 연합하여 남쪽에서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올라왔을 것이다. 다윗은 아합이 이끄는 군대가 돌아오기까지 그들을 내쫒기 위해 전투에 직접 참가하여 필사적으로 그들과 싸웠으나 패배와 많은 손실이 있었던 것같이 보인다(1절). 그로인해 다윗과 함께한 백성은 두려움과 당황 가운데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3절). 다윗은 어떤 연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군대(10절)와 함께 하지 않은 것으로 인해 당황하였으나 주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주님의 도움을 간구한다. 그 상황에서 요압이 이끄는 군대가 도착하여 시리아-에돔 연합군을 공격하여 큰 승리를 얻었으며 다윗과 그들은 앞으로 나아가 에돔을 굴복케 하고 에돔 곳곳에 수비대를 두고 에돔을 지배했다. 이 시를 통해 다윗은 요압이 이끄는 군대가 합류하였어도 군대의 숫자를 헤아려 승리를 확신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하였음을 보여준다(11절,​ 사람의 도움은 헛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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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소망은 낙심 가운데 일어난다(시 6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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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1 **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내던져 흩으시고 우리를 기뻐하지 아니하셨사오나 오 친히 우리에게로 다시 돌아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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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자기와 함께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고 있다. “우리를 내던져 흩으시고” 마치 묶여있는 끈을 풀어 곡식단을 내던지면 흩어지듯이 주님께서 자기 백성을 내던져 흩으셨다고 다윗은 말한다. 분명 다윗과 함께한 백성은 “주께 버림받은” 것 같은 감정으로 가득할 것이다. 에돔의 초기 승리는 다윗과 함께 한 자들을 마치 곡식단을 내던지듯이 혹은 2절에서 말하듯이 땅이 갈라져 나뉘게 될 때 사람들이 혼란 가운데 있듯이 만들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윗은 주께 “다시 돌아오기를” 간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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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때로 세상 사람들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과 같은 일들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백성은 당황하게 되며 마음은 깊은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시편기자나 다윗은 이스라엘의 패배를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버리신 것으로 해석했다(시 44:9-16; 89:38-45). 다윗은 하나님께서 왜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믿음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의 도우심을 여전히 소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시 44:9-16, 시 89: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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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2 **주께서 땅을 떨게 하사 갈라지게 하셨사오니 그것의 갈라진 틈을 고치소서. 땅이 흔들리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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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과 함께한 백성의 마음은 마치 지진이 휩쓸고 지나간 모습일 것이다. 지진으로 모든 것이 흔들릴 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무엇을 할지 몰라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고 한다. 지금 백성의 마음이 그러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의 부분에서 크게 흔들린 것이다. 다윗은 주께서 백성의 마음을 고쳐주시길 간구한다. 성도에게 있어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무너질 때만큼이나 영적으로 어렵거나 위태한 때는 없다. 우리는 때로 마치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잊으신 것같이 완전히 버림받은 것 같은 그러한 상황을 직면하곤 한다. 그 때 크리스천은 크게 흔들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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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3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운 일들을 보이시고 우리로 하여금 놀라게 하는 포도즙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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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에게 어려운 일들 즉 고난과 실망과 낙망과 좌절과 뜻대로 되지 아니함과 원수의 이김과 패배와 죽음과 두려움 등을 보게 하셨다. 마치 독한 포도주를 마신 사람이 강한 술의 쏘는 것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지고 아찔해지는 것처럼 주의 백성은 어려운 일들로 인해 마음이 심란한 상태에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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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려운 일들을 주의 백성에게 보이신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있다. 백성의 죄로 인한 것인가? 만일 그러하였다면 다윗은 분명 그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위해 간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의 어디에도 용서를 구하는 부분은 있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에게 있어 혼란과 동요나 심란한 마음을 가져오는 부분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때로 이방인들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께서 완전히 자신의 백성을 버린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마치 의로운 욥이 고난을 받는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어쩌면 주님은 다윗에게 무언가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패배를 보여주시지 않았다면 다윗은 마음이 높아졌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다윗은 자신을 신뢰하였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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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시적 패배를 허락하신 것이지 궁극적 패배를 허락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의 백성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 같으나 그리스도 안에서 정복하는 자보다 더 나은 자들이 됨과 같다. 다윗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언약 테두리 안에 있다. 마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듯이. 롬 8:35-39을 보면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 언급하면서 “환란이나 곤경이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벌거벗음이나 위험이나 칼”을 언급하였다. 뿐만 아니라 “종일토록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같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외부적인 것들이 전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무효화시키지 못함을 말한다. 많은 경우 우리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이나 물질적인 축복들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평가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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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4 **주께서 주를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깃발을 주심은 진리로 인하여 그것을 펼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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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패배와 손실이 가져온 혼란과 낙심에 빠지지 않고 믿음의 사람으로서 그가 해야 할 바를 알았다. 주님은 다윗과 그분의 백성에게 깃발을 주셨고 그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것을 높이 들어 펼쳐야 했다. 이스라엘의 깃발은 주 하나님이셨다. 이것이 여호와 닛시 즉 “우리의 깃발이신 주”란 뜻이다(출 17:15). 주님은 우리가 진리 즉 공의와 옳은 것을 지키고 높이기를 원하신다. 바람이 강한 날에는 깃발을 높이 들어 ​ 올리기가 어렵듯이 때로 우리가 깃발을 들어 올리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전쟁은 의와 공의와 진리를 위한 것이다. 바울은 이 사역을 위하여 어떻게 행하였나?​(고후 6: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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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시련 당할 때 그 시련 당하는 것에 생각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시련들은 대체적으로 스스로를 부풀려서 우리의 눈에 크게 보이게 된다. 시련들은 우리에게 심한 압력 즉 스트레스를 주며 우리는 시련들이 주는 슬픈 상황에 머물러 거하게 된다. 시련들의 상황이나 그 자체가 지속되면서 우리는 움추려들고 당황하며 낙심하게 된다(시 60:3). 거기다 우리는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를 우리가 당하는 시련들이 우리에게 내려진 심판들이라고 생각한다. 우리의 죄들이 우리를 두렵게 만들고 혹 내가 알지 못하더라도 어떤 죄들이 나에게 이런 결과들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하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긍휼이 아니라 진노 가운데 우리를 감찰하고 계시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의 연약함이다. 우리가 겸손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돌아설 때 우리의 마음에서 소망은 일어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적하여 계시지 아니하고 우리를 위하여 계신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를 시련들로 감찰하신다면 그것 역시 우리의 선을 위한 것이다. 우리 위에 들려진 그분의 깃발은 여전히 사랑의 깃발이다(아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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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이 낙심 가운데 있는 혼을 지탱한다(시 6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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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5 **또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구출하려 하심이오니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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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 그런데 다윗의 이름의 의미 역시 “사랑받는 자”(beloved)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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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시고**. 성경에서 주의 오른손은 권능의 오른손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오른손은 칼을 들고 창을 던지며 활에 화살을 당기는 손이다. 즉 다윗은 주님의 권능으로 자신의 백성을 건지시길 간구한다. 버려진 하나님의 백성처럼 보이나 다윗은 믿음을 잃지 않았다. 왜 그러한가?​ 6-8절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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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6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 속에서 이르시되,​ 내가 기뻐하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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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자신의 거룩함 속에서 이르시되** 거룩하신 하나님으로서. 참되신 하나님으로써. 약속하신 것을 항상 성취하시는 하나님으로써. 즉, 자신이 약속하신 확증이나 언약을 확실히 실행하실 것이라는 것을 그분의 거룩하심이 그것을 보증하는 증표인 셈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 땅 즉 팔레스타인을 그들의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시 105:6-11). 그 땅의 범주는 창 15:18에 나와 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에돔 역시 그 범주에 포함된다. 지금의 요르단 역시 그 범주에 포함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을 차지하려고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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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기뻐하리라**. 주님이 약속하신 것들을 수행함은 주님의 기쁜 뜻 가운데서 행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셨고 그 약속을 수행하시는 것이 그분의 기쁘신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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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세겜을 나누며** 다윗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하셨던 말씀과 그를 통해 가나안 땅을 나누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수 1:6). 세겜은 에브라임에 속한 지역으로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중간에 위치하며 로마인들은 그곳을 네아폴리스라 불렀고 오늘날 지명은 나블루스(Nablus)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 27-28장의 축복과 저주의 약속을 생각할 수 있다(수 8: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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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곳 골짜기를 측량하리라**. 숙곳 골짜기는 요르단 동쪽 편에 있으며 여호수아에 의해 갓 지파에 속하게 되었다”(수 13:27). 숙곳이 처음 등장한 것은 창 33:17로 야곱이 그곳에서 가축을 위해 우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숙곳은 “우리”(boots)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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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7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가 내 것이며 또한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힘이요, 유다는 나의 법을 주는 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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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르앗과 므낫세는 요르단 동쪽에 있으며 에브라임과 유다는 서쪽에 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대로 큰 바다에서 유프라테스 강까지를 의미한다. 에브라임은 상당히 큰 지파로 요르단 강 서쪽에서 중앙에 속한 땅이 이 지파에게 떨어졌다. 그들은 모든 지파의 중앙에 있기 때문에 주님은 “내 머리의 힘”이라 부르셨다. 에브라임은 비록 지파가 약해져 통치권을 유다지파에게 넘기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였으며 솔로몬 이후로 주님은 이스라엘의 열 지파들을 에브라임 지파의 사람 여로보암에게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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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다는 나의 법을 주는 자로다**. 이것은 창 49:8-12에 주어진 예언에 따른 것이다. 유다에서 왕들이 나왔다. 유다는 통치권을 갖게 된 지파이다(창 49:10). 이와 관련한 것은 시편 78편이 잘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시 78:67 이후로 주님께서 유다 지파를 택하셨음을 말한다. “또 그분께서 요셉의 장막을 거절하시며 에브라임 지파를 택하지 아니하시고 68 오직 유다 지파 곧 친히 사랑하신 시온 산을 택하사 69 자신의 성소를 높은 궁궐들같이 지으시되 친히 영원토록 굳게 세우신 땅같이 지으셨도다.”(시 78: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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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8 **모압은 나의 씻는 그릇이라. 내가 에돔 위로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너는 나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라, 하셨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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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압은 나의 씻는 그릇이라**. 집에서 사용하는 여러 그릇들 중 씻는 그릇으로 사용되는 것은 그다지 중요성을 갖지 않는다. 단지 물만 담아두기만 하면 된다. 이 표현은 모압은 이미 정복되었음을 보여준다. 삼하 8:2에서 그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또 모압을 쳐서 그들을 땅에 내던지고 줄로 재어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이와 같이 모압 족속이 다윗의 종이 되어 예물을 가져오니라.”(삼하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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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에돔 위로 내 신을 던지리라**. 이것은 소유권을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당시 에돔은 아직 정복되지 않았다. 룻기를 보면 나오미가 파는 땅을 사는 것을 포기했던 사람은 보아스에게 자신의 신을 벗어서 증표로 주었다. 그는 땅을 사면 룻을 자기 아내로 받아들여 끊어진 대를 이어주어야 하는 것을 원치 아니했다. 블레셋아,​ 너는 나로 인하여 개가를 부르라. 블레셋은 이미 지배아래 놓여 있어 굴복함을 의미하는 것 같다. 블레셋은 더 이상 자신이나 자기가 섬기는 신들로 인해 개가를 부르지 못하는 처지에 이르게 되었으므로 이제 하나님을 두고 개가를 부르라고 말하는 것이다(삼하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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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여기서 여러 사람들과 장소들의 이름을 언급하고 있다. 아마도 다윗의 마음에는 모세와 사무엘과 나단 대언자의 말들이 떠올랐을 것이다. 다윗은 그 말들을 기억하고 위로를 받았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그분의 거룩함 가운데서 이르셨다”고 말해야할 이유가 얼마나 많은가! 우리에게는 다윗이 소유했던 말씀 뿐 아니라 대언자들과 사도들의 말씀들이 있으며 “주님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했던 베드로처럼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있다. 성경은 약속에서 부요하다(벧후 1:3-4, 고후 1:20). 우리는 그 약속들을 들어 은혜의 왕좌 앞으로 가지고 가서 “주의 종에게 이 말씀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이 말씀으로 제가 소망을 품었나이다. 이것이 나의 고통중에 나의 소망이 되었나이다.”라고 말해야 한다(시 119:4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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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II.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기도가 낙심을 이기는 승리를 준다(시 6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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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9 **누가 나를 저 견고한 도시 안으로 데려갈까?​ 누가 나를 에돔 안으로 인도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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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돔의 수도는 페트라였다. 그곳은 견고하며 바위를 깍아 만든 도시이자 그곳에 가기위해서는 반달모양의 협곡을 지나쳐야 하기 때문에 정복할 수 없는 곳으로 알려졌다. 그로인해 에돔 사람들은 자신들이 정복당하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 오바다 1:2은 그들의 높아진 마음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 “¶ 바위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처소를 둔 자여,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그자가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누가 나를 땅으로 끌어내리겠느냐?​ 하는도다.”(옵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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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10 **오 하나님이여,​ 우리를 내던지신 주께서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오 하나님이여,​ 우리의 군대들과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신 주께서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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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일시적인 패배를 허락했지만 궁극적인 승리를 주셨다. 어쩌면 기고만장한 에돔은 많은 수가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결국 자신의 나라를 지키는 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하여금 일시적인 패배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자신을 신뢰하지도 많은 수의 군대를 의지하지 말 것을 배우게 하셨으며 또한 주님은 그 일을 통해 그 견고한 도시 에돔을 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 뒤로 다윗은 에돔을 정복하고 거기에 수비대를 두어 그곳을 다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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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11 **우리에게 도움을 주사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사람의 도움은 헛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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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비록 전쟁은 사람의 손으로 하나 모든 것 안에서 역사하사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다윗에게 요압과 그의 형제가 이끄는 군대가 합류하게 되었어도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참된 승리를 가져옴을 믿었다. 종종 우리는 사람을 의지하거나 자신을 의지한다. 특히 어떤 계속되는 승리나 상황이 되면 승리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다. 즉 자신을 의지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여호수아의 군대에서 볼 수 있다. 그들은 여리고에서 승리하였으므로 작은 아이 성은 간단할 것으로 여겼다. 이것이 우리의 영적으로 교만해질 수 있는 연약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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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60:12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리니 우리의 원수들을 밟으실 이가 바로 그분이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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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한 채 믿음으로 주의 전쟁을 싸웠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리라.”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고백이어야 할 것이다. 경험이나 체험을 통해 어떤 결과가 주어질 것을 예상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자신을 의지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
 +많은 위대한 것들이 약속되었으나 어떻게 그것들이 성취될 것인가? 만일 우리가 사람과 그 일을 이루어야 한다면 우리는 의심들과 두려움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과 한다면 그분은 능히 하실 수 있으시며 또 기꺼이 자신의 말씀을 성취하실 것이다. 그분의 성품과 그분의 사역들을 기억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낙심되는 것들과 우울하게 만드는 영향력들로부터 일어날 것이다. 만군의 주께 우리 자신을 의탁함으로써 우리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싸우고자 나아간다. “**여호와 닛시**”는 우리의 표어(슬로건)이며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전 15:​57)라고 우리는 말할 수 있다.
  
시60_2.txt · 마지막 수정: 2020-05-30 19:42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