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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상13.33-34
2014년 4월 6일 주일오전설교

잘못된 롤 모델 여로보암

본문말씀: 열왕기상 13장 33-34절

서론

옷을 입을 때 첫 단추가 잘못되면 그 다음 역시 잘못된 자리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이 맨 처음은 매우 중요한 자리이다. 하나님께서도 맨 처음 무언가를 주시거나 명령하실 때에는 그에 따른 원칙을 명확히 보여주시곤 하셨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대한 명령을 주셨을 때 주님은 그 날을 거룩한 안식일로 부르시고 사람들에게 그 날을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 그런데 처음 그 명령을 주셨을 때 사람들 중 여전히 안식일 날 만나를 주우려 나간 사람들이 있었고 주님은 그들에 대해 책망하셨다.

출 16:26-30 엿새 동안은 너희가 그것을 거두되 일곱째 날은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아무것도 없으리라, 하니라. 27 ¶ 일곱째 날에 백성 중 몇 사람이 거두러 나갔다가 찾지 못하니라. 28 {주}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내 명령들과 내 법들 지키기를 거부하느냐? 29 보라, {주}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주었으므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분의 빵을 너희에게 주노니 일곱째 날에는 너희 각 사람이 자기 처소에 머물며 아무도 자기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하시니라. 30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

그 뒤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에 대해 더 엄격히 말씀하신다.

출 31:14 그러므로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그것은 너희에게 거룩하니라. 안식일을 더럽히는 자는 다 반드시 죽일지니 누구든지 그 날에 일하면 그 혼은 자기 백성 가운데서 끊어지리라.

그런데 민수기 15:32에 가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어긴 자들에 대한 사람들에 대한 법을 정하신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에 안식일에 나무 거두는 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를 감금하여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때 주님은 그를 돌로 쳐 죽일 것을 명령하셨다. 만일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살려주었다면 하나님의 명령은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되는 법이라는 것을 주님 스스로 보여주시는 결과가 되었을 것이다. 신약에 와서도 우리는 그 원칙을 볼 수 있다. 교회가 세워지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자기들의 재산을 드리는 것을 본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람들에게서 높아지는 것은 원하였으나 실제적으로 그들이 가진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다. 재물이 그들의 수중에 있을 때에 그들의 마음대로 할 수 있었음에도 그들이 했던 방법은 사도들에게 일부를 드리고 전체를 가져왔다고 거짓말하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성령님에 대해 거짓말한 것에 대한 직결심판을 내렸다. 그 둘은 죽은 자가 된 것이다. 주님은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헌물의 많고 적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원하신다. 그런데 거짓된 것은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것 중 하나이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원칙대로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신다면 어쩌겠는가? 그러나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임을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것이다.

본문을 보면 여로보암의 행적에 대해 성경이 무어라 기록하는지를 보게 된다. 여로보암은 솔로몬 이후로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로 나뉘었을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그와 그의 가족에 대해 성경이 무어라 말씀하는가? “그의 집이 지면에서 끊어지고 멸망하게 되니라.” 왜 하나님께서 초대 왕의 집을 끊게 하셨는가? 오늘 우리는 그 점을 보고자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유다의 왕들과 이스라엘의 왕들을 평가하실 때 언급되던 왕들의 이름이 있다. 먼저 다윗 왕이 언급된다. 성경을 보면 유다의 왕들에 대한 평가를 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아비얌)가 전에 자기 아버지가 자기 앞에서 행한 죄들 곧 자기 아버지의 모든 죄 가운데 걸었으며 그의 마음이 자기 조상 다윗의 마음처럼 {주} 자기 [하나님]께 대해 완전하지 아니하였으나”(왕상 15:3). “그(아하스)가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였으나 자기 조상 다윗과 같지는 아니하였더라.”(왕하 14:3) “그가 예루살렘에서 십육 년 동안 통치하였으나 자기 조상 다윗과 같지 아니하여 {주} 자신의 [하나님]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지 아니하고”(왕하 16:2) “히스기야가 자기 조상 다윗이 행한 모든 것에 따라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니라.”(왕하 18:3) “그(요시야)가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것을 행하여 자기 조상 다윗의 모든 길로 걷고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나 치우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22:2)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다윗 왕을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왕의 모범이자 기준 즉 롤 모델로 삼으셨음을 알 수 있다. 다윗 왕은 유다 지파에서 처음으로 난 초대 왕이었으며 그는 올바로 채워진 첫 단추와 같은 셈이다.

반면에 이와 같은 평가도 있다. “그(바아사)가 { 주} 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고 여로보암의 길로 걸었으며 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할 때 이용한 그의 죄 가운데서 걸었더라.”(왕상 15:34) “ 그(오므리)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걸었으며 또 여로보암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할 때 이용한 그의 죄 가운데서 걸어 그들의 헛된 것으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분노를 일으켰더라.”(왕상 16:26) “그(아합)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들 가운데서 걷는 것을 가벼운 일로 여기고 시돈 사람들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으며 또 가서 바알을 섬겨 그에게 경배하고 32 자기가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집에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33 또 작은 숲을 만들었으니 아합이 자기 이전에 있던 이스라엘의 모든 왕보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분노를 더 많이 일으켰더라.”(왕상 16:31-33) “그(아하시야)가 {주}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자기 아버지의 길과 자기 어머니의 길과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길로 걸었더라.”(왕상 22:52) “그러나 예후가 주의를 기울여 자기의 마음을 다해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율법 안에서 걸으려 하지 아니하였으니 그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여로보암의 죄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더라.”(왕하 10:31) “(여호아하스가) {주}의 눈앞에서 악한 것을 행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들을 따르고 거기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왕하 13:2) 우리는 하나님께서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이 따르지 말아야 할 롤 모델로 “여로보암”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직 한 사람 아합은 여로보암보다 더 악한 왕이었다. 여로보암은 제대로 체워지지 아니한 첫 단추인 셈이다.

오늘 우리는 여로보암의 삶을 봄으로써 그의 실책을 보고 우리가 따르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교훈을 배우고자 한다.

I. 하나님의 약속들에 대한 불신

왕상 11:26을 보면 여로보암은 에브랏 사람 즉 에브라임 지파에 속한 사람이었다. 솔로몬은 그의 재능을 보고 그에게 요셉의 집의 모든 책무를 맡겼다. 원래 에브라임 지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장자권을 허락하신 지파였고 베냐민 지파인 사울 왕이 세워지기 전까지 이스라엘에서 높임을 받고 지도자를 배출하던 지파였다. 하나님의 성막과 궤도 에브라임 지파의 땅인 실로에 있었다.(이와 관련한 역사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전쟁의 날에 뒤로 물러간 에브라임 설교를 참조하세요.) 솔로몬이 말년에 하나님을 올바로 섬기던 마음에서 떠나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왕국을 찢어 그 중 열 왕국을 에브라임 지파에게 다시 주시기로 계획하신다. 그 계획을 하나님의 대언자 아히야의 입을 통해 여로보암에게 계시하셨다.

왕상 11:29-33 여로보암이 예루살렘에서 나가던 그때에 실로 사람 대언자 아히야가 길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새 의복을 입었고 그들 둘만 들에 있었더라. 30 아히야가 자기 위에 걸친 그 새 옷을 잡아 열두 조각으로 찢고 31 여로보암에게 이르되, 너는 열 조각을 취하라. {주}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느니라. 보라, 내가 왕국을 솔로몬의 손에서 빼앗아 찢어서 열 지파를 네게 주리라. 32 (다만 그는 내 종 다윗을 위하여 그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택한 도시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소유하리니) 33 이는 그들이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들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 족속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에게 경배하며 그의 아버지 다윗이 행한 것 같이 하지 아니하여 내 길들로 걷지 아니하고 내 눈에 올바른 일을 행하지 아니하며 내 법규와 내 판단의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으로 인하여 그의 지파를 축복하셨고 또 메시야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지파를 통해 오실 것이므로 그 지파를 항상 두실 것이라 말씀하신다.

왕상 11:34-36 그러나 내가 택한 내 종 다윗이 내 명령과 내 법규를 지켰으므로 내가 그를 위하여 솔로몬의 생전에는 온 왕국을 그의 손에서 빼앗지 아니하고 그가 통치자가 되게 하려니와 35 내가 그의 아들의 손에서 왕국을 빼앗아 네게 주되 곧 열 지파를 줄 것이요, 36 그의 아들에게는 내가 한 지파를 주어 내가 나를 위해 내 이름을 두려고 택한 도시 예루살렘에서 내 종 다윗에게 등불이 항상 내 앞에 있게 하리라.

이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게 베냐민 지파만 허락하시며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에 왕국은 둘로 나뉘게 된다. 주님은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열왕국의 왕으로 세우되 그에게 약속을 함께 주셨다.

왕상 11:37-39 내가 너를 취하리니 너는 네 혼이 원하는 모든 것에 따라 통치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 될 것이로되 38 네가 만일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내 길들로 걸으며 내 눈앞에서 올바른 일을 행하여 내 종 다윗이 행한 것 같이 내 법규와 내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행한 것 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 39 내가 이것으로 인해 다윗의 씨를 괴롭게 할 터이나 영원토록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니라.

얼마나 큰 약속인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준 약속은 다윗에게 약속한 것과 동일한 부분이 있다. “네 집과 네 왕국이 네 앞에서 영원히 굳게 서고 네 왕좌가 영원히 굳게 서리라.”(삼하 7:16) 이것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바였다. 그런데 여로보암에게도 “견고한 집”을 약속하셨고 “이스라엘” 즉 열 지파로 세워진 왕국을 약속하셨다. 주님의 원래의 계획은 메시야께서 오실 때까지 이 두 왕국을 유지하다가 메시야로 인하여 두 왕국이 하나의 막대기 즉 유다의 막대기와 에브라임의 막대기가 하나가 되길 원하셨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에게 “네 혼이 원하는 모든 것에 따라 통치하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통치의 자유까지 허락하셨다. 그 모든 축복에 오직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이것을 요구하셨다. “네가 만일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에 귀를 기울이고 내 길들로 걸으며 내 눈앞에서 올바른 일을 행하여 내 종 다윗이 행한 것 같이 내 법규와 내 명령을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그가 하나님의 길들로 걸으며 그분의 모든 법규와 명령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의 길들이며 또 의의 길들이었다. 주님은 자신을 온전히 따랐던 다윗에게서 그것을 보셨고 여로보암에게도 동일한 것을 원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율법을 준행하는 행위적인 것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을 요구하셨음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여로보암으로 하여금 물질적 축복을 얻기 전에 영적인 면에서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을 요구하신 것이다. 주의 눈앞에서 올바른 일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 믿음으로 화답하는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다윗의 삶이어왔다. 다윗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흔들리지 아니하고 믿음을 향해 순종함으로 나와왔다. 그런데 처음부터 여로보암은 잘못된 선택을 한다.

왕상 11:40 이러므로 솔로몬이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매 여로보암이 일어나 이집트로 도망하여 이집트 왕 시삭에게 이르러 솔로몬이 죽을 때까지 이집트에 있었더라.

여로보암에게 계시된 이 대언의 말씀은 그가 입을 열지 않았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였을 것이다. 왕상 11:29에 따르면 대언자 아히야가 여로보암에게 이 계시를 주었을 때 그 둘 두 사람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것이 솔로몬에게 알려졌음은 여로보암이 자신이 받은 계시를 주님의 때가 이를 때까지 마음속에 간직하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언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여로보암은 사람들의 마음이 자기에게로 결집되게 하려면 그 대언의 계시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 좋을거라 여겼는지 모르겠다. 그 계시의 소문을 들은 솔로몬은 여로보암을 죽이려 하였다. 여로보암의 행보는 다윗의 경우와 다름을 본다. 다윗은 비록 그가 선견자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았으나 그는 그것을 자기 마음에 간직하였고 사람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다. 사울이 후에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것은 다윗의 말로 인한 것이 아니라 여인들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높여 노래불렀기 때문에 질투로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다윗은 주님의 때가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기다린 반면 여로보암은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게 하도록 정치적으로 움직였다. 이로 인하여 그는 세상을 상징하는 이집트로 도망하여야 했다. 그의 이집트로 도망한 것은 그의 사고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조금 있다 살필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드로 도망간 다윗에 대해 기뻐하지 않으셨으며 다윗이 시글락에 안주하셨을 때에도 그 시글락을 불태우셨는데 이집트는 어찌 생각하시겠는가?

솔로몬이 죽은 후 정치적 상황은 매우 급변하게 되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지혜있는 자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청년의 교만한 조언대로 움직였고 그것은 열 지파의 분노를 얻었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집에 대해 반역한 후 이집트에서 돌아온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웠다. 그 뒤 르호보암은 열 지파를 다시 가져오기 위해 전쟁을 준비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자신의 사람 스마야의 입을 통해 그들이 싸우지 말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갈 것을 명령하셨다.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서 대언자 아히야의 입을 통해 하셨던 말씀대로 이루어 가고 있음을 여로보암은 보고 그것을 두고 세겜과 브느엘을 건축한다.

왕상 12:25 ¶ 그때에 여로보암이 에브라임 산에 세겜을 건축하고 그 안에 거하며 또 거기서 나가 브느엘을 건축하고

세겜은 요셉의 뼈가 묻혔던 곳(수 24:32)이며 또한 에브라임 지파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이 주님을 섬기도록 백성과 언약을 맺었던 곳이다.

수 24:1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으고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그들의 우두머리들과 재판관들과 직무 수행자들을 부르매 그들이 자신을 [하나님] 앞에 보이니라.

수 24:21-25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가 {주}를 섬기겠나이다, 하매 22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너희를 위해 {주}를 택하고 그분을 섬기리라 한 것에 대해 너희가 너희 자신에게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매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증인이 되었나이다, 하니라. 23 그가 이르되, 그런즉 이제 너희 가운데 있는 이방 신들을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라, 하니 24 백성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주}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섬기고 그분의 음성에 우리가 순종하리이다, 하므로 25 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위하여 법규와 규례를 세우니라.

그런 까닭에 세겜은 영적으로 매우 중요한 장소였으며 르호보암이 자신이 왕으로 세움을 얻을 때에도 “세겜”으로 나아갔었다. 브느엘은 “브니엘”의 또 다른 이름으로 브니엘은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장소였다. 그곳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셨다(창 32:30). 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란 뜻이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하나님께서 그와 하셨던 약속을 성취하신 것을 보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믿음과 신뢰를 둠으로써 순종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정치적으로 움직임으로 큰 죄악을 범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왕상 12:26-27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이제 왕국이 다윗의 집으로 돌아가리로다. 27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의 집에서 희생물을 드리려고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그들의 주 유다 왕 곧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가 그들이 나를 죽이고 유다 왕 르호보암에게로 다시 돌아가리로다, 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일 년에 세 차례 그분께서 정하신 장소로 나아올 것을 명령하셨고 그곳은 예루살렘이었다. 그 세 차례는 무교절과 칠칠절과 장막절이었다. 그 때가 되면 모든 유대인들은 자기가 거하는 처소에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모였다.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백성들이 자기를 따르던 마음에서 돌이켜 자신을 죽일 것이란 두려운 생각을 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것은 실제 그렇게 되지 못하였다. 주님은 그에게 “견고한 집”을 약속하셨지만 그는 그것을 확신하지 못한 것이다. 주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셨음에도 그는 그들이 자기에게서 떠나갈 것이라 두려워했다. 주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환경과 상황에 대한 두려움과 자신의 지혜를 더욱 의지함으로 인하여 여로보암은 크나큰 죄를 이스라엘에게 가져오고 만다.

왕상 12:28-33 이것에 관하여 왕이 의논한 뒤 금송아지 둘을 만들고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이 너무 큰일이로다. 오 이스라엘아,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네 신들을 보라, 하니라. 29 그가 하나는 벧엘에 두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으므로 30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이 금송아지들 중 하나 앞에서 경배하려고 단에까지 갔기 때문이더라. 31 그가 또 산당들의 집을 짓고 레위의 아들들이 아닌 자들 곧 백성 중에서 가장 천한 자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으며 32 또 여로보암이 유다에 있는 명절처럼 팔월 곧 그 달 십오일에 명절을 정하고 또 제단 위에 헌물을 드리니라. 또 그가 벧엘에서도 그와 같이 행하여 자기가 만든 송아지들에게 희생물을 드렸으며 또 자기가 만든 산당들의 제사장들을 벧엘에 두었더라. 33 이와 같이 그가 자기 마음속으로 생각하여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에 자기가 벧엘에 만든 제단 위에 헌물을 드렸으며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절을 정하고 제단 위에 헌물을 드리고 분향하니라.

여로보암이 취한 해결책은 사람들을 종교를 이용해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이 섬길 종교시스템을 고안해 내었다. 그가 한 것은 먼저 종교의 대상이었다. 그는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게 하나는 단에게 두었다. 벧엘은 예루살렘보다 남쪽에 있는 도시였고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던 도시였다. 그런데 어찌하여 금송아지인가? 그것은 그가 이집트에서 보고 배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소는 풍요와 번영을 상징하는 짐승이었다. 이집트에서 소는 특별한 짐승으로 숭배되었고 그것을 따라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백성은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전례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여로보암은 사람들의 종교심을 이용하고 또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숭배에 취약하다는 것을 이용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성취하시는 것을 보고 주님께 확신과 신뢰를 둠으로써 믿음의 길을 따라 걸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대로 걷고자 하였다. 그는 자신을 위해 이집트에서 배운대로 새로운 종교체재를 수립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하늘 아래와 땅 아래 그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 라는 명령을 어기고 우상을 만들었고 그것을 하나님의 자리에 놓았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수고하지 않고도 쉽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먼 예루살렘까지 가느니 벧엘과 단에서 주님께 희생물을 드리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주님을 섬기는 일이 어려우니 쉽게 간단하게 주님을 섬기자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주님을 섬기던 경배의 마음에서 경솔의 마음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이다. 여로보암은 종교의 대상과 종교의 장소 뿐 아니라 종교의 때까지 지정하였다. 그가 지정한 날은 팔월 십오일로 “유다에 있는 명절처럼” 즉 장막절을 겨낭하여 새로운 날을 지정하였다. 장막절은 유대인의 달력으로 7월 15일에 있는 일주일간 지속되는 명절이었다. 그 날 어렵게 예루살렘에서 일주일간 있는 것보다 가까운데서 대충 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가? 그가 지정한 날은 팔월 십오일로 아마도 보름달이 뜨는 때였을 것이다. 우리의 추석과 같은 시기이지 않았겠는가? 뿐만 아니라 여로보암은 자신의 종교체제를 위해 산당들을 짓고 백성 중에서 가장 천한 자들을 제사장들로 세웠다. 대하 13:9에 따르면 “누구든지 어린 수소 한 마리와 숫양 일곱 마리를 가지고” 오면 여로보암은 그들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마지막으로 그는 스스로가 왕임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만이 행할 수 있는 희생물을 제단에 드리는 일까지 행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만 주신 직무였다. 레위의 아들들이라 할지라도 그가 아론의 계열의 사람이 아니면 제단에 번제 희생물을 바칠 수 없었다. 주님은 그러한 자들을 죽일 것을 명령하셨기 때문이었다(민 3:5-10). 그러나 여로보암은 자신이 왕이자 제사장의 위치에 있는 자라는 것을 보이고자 했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멜기세덱의 계열에 있는 자인 것처럼 하는 것이다. 멜기세덱은 왕이자 제사장이었다.

II.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함

그로인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사람 하나를 보내어 그에게 경고하신다.

왕상 13:1-2 보라, [하나님]의 사람 하나가 {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유다에서 나와 벧엘에 이르렀는데 여로보암이 제단 옆에 서서 분향하므로 2 그가 제단을 향하여 {주}의 말씀으로 외쳐 이르되, 오 제단아, 제단아,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다윗의 집에 요시야라는 이름의 아이가 태어나리니 그가 네 위에 분향하는 산당들의 제사장들을 네 위에 헌물로 드릴 것이요, 또 사람들의 뼈를 네 위에서 태우리라, 하고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의 왕에게로 돌아갈 것을 염려하였는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집”의 사람 요시야라는 이름의 왕이 벧엘의 제단을 부실 것을 예언의 말씀으로 주셨다. 그것은 그가 세운 종교체제가 결말이 있을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영원하지 못하고 망하고 말 것이다. 주님은 대언의 말씀의 확실함을 위해 표적을 같이 주셨다.

왕상 13:3-5 바로 그 날에 그가 표적을 주며 이르되, 이것은 {주}께서 말씀하신 표적이라. 보라, 제단이 갈라지며 그 위에 있는 재가 쏟아지리라, 하니라. 4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하는 것을 여로보암 왕이 들을 때에 그가 제단에서 손을 내밀며 이르기를, 그를 잡으라, 하였는데 이때에 그가 그를 향하여 내민 손이 말라서 그가 다시 그것을 거두어들이지 못하였더라. 5 또 [하나님]의 사람이 {주}의 말씀으로 준 표적대로 제단도 갈라지며 재가 제단에서 쏟아지므로

여로보암의 즉각적인 반응은 그 하나님의 사람을 붙잡아 죽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손을 말라버리게 하셨다.

왕상 13:6-8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이제 {주} 곧 네 [하나님]의 얼굴에게 은혜를 간구하고 나를 위해 기도하여 내 손이 다시 회복되게 하라,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주}께 간청하니 왕의 손이 다시 회복되어 전과 같이 되니라. 7 왕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이르되,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원기를 회복하라. 내가 네게 보상을 주리라, 하매 8 [하나님]의 사람이 왕에게 이르되, 왕께서 왕의 집 절반을 내게 줄지라도 나는 왕과 함께 들어가지 아니하고 이곳에서 빵도 먹지 아니하며 물도 마시지 아니하리이다.

손이 말라버린 여로보암은 이제 그에게 주님께 간청하여 회복케 해주시길 말한다. 그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의 기도에 응답하셨다. 그 뒤 여로보암은 매우 교묘하게 행한다. 자신이 한 일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다면 적어도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처럼 보이게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와 함께 집에 가서 원기를 회복하라. 내가 네게 보상을 주리라.”라고 말한다. 그가 보았을 때 하나님의 사람이 매우 먼 길을 왔고 피곤해 보였음을 판단하고 그것을 이용한 것이다. 그는 이 상황을 정치적으로 모면하고자 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 여로보암의 말을 듣고 따라 갔다면 그가 전한 모든 것들은 수포로 돌아가고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은 셈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대해 미리 하나님의 사람에게 벧엘에서 먹지도 말고 마시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하셨다. 여로보암은 하나님께서 여전히 그를 아끼시고 그에게 경고하심에도 회개함으로 나아가서 주님께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행해야 하리이까?” 하고 그분의 뜻과 인도하심을 구하지 아니했다. 다윗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따르는 데서 돌이키지 아니한 반면 여로보암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잘못된 것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경고를 보여주시고 또한 말씀을 전한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을 통해 그 엄중한 경고를 더욱 강화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서 돌이키지 아니하였다.

왕상 13:33-34 ¶ 여로보암이 이 일이 있은 뒤에도 자기의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금 백성 중에서 가장 천한 자들을 산당들의 제사장들로 삼되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그를 구분하여 산당들의 제사장들 중의 하나가 되게 하였으므로 34 이 일이 여로보암의 집에 죄가 되어 그의 집이 지면에서 끊어지고 멸망하게 되니라.

이제 주님은 그의 집안을 파멸케 하기로 결심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결론

우리 앞에 두 롤 모델이 있다. 하나는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하여 따랐던 믿음의 사람 다윗이고 다른 롤 모델은 주님의 약속을 믿기보다, 두려움으로 자신의 계획 가운데 정치적으로 모든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여로보암이 있다. 우리의 인생의 마지막에 대해 기록된다면 무어라 적혀있을까?

왕상13.33-34.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