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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9.1-6
2019년 7월 28일 주일오전설교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는가?

본문 말씀: 사도행전 9장 1-6절

사도행전 9:1-6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치려고 여전히 위협과 살기를 내뿜으며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마스쿠스의 회당들에 가져갈 편지를 그에게 요청하니 이것은 그가 이 길에 속한 사람을 만나면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더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나와 그를 둘러 비추더라. 4 그가 땅에 쓰러져 들으매 한 음성이 있어 그에게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네가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5 그가 이르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가시 채를 걷어차기가 네게 고생이라, 하시거늘 6 그가 떨며 놀라 이르되, [주]여, 내가 무엇을 하기 원하시나이까? 하매 [주]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도시로 들어가라. 그러면 네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듣게 되리라, 하시니라.

서론

바울의 회심의 사건을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주님께서 이 사울이라는 사람을 취하셔서 은혜로 그를 구원하시고 그를 변화시켜 이방인들을 향한 자신의 놀라운 사도로 만드시는 과정이 여기에 기술되어 있다. 이 과정은 또한 여러분과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도 주님께서 쓰시는 놀라운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을 준다.

사실 사울의 삶을 보면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정말 합당한 인물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수밖에 없다. 그는 후보자로서 절대 거론되지 않을 인물이었다. 그는 모든 크리스천들이 두려워하던 사람으로 모든 것을 자신의 권력 아래 두어 주 예수님의 이름과 관련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에게 오셔서 이 사람을 그가 있던 곳에서 옮겨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그를 사용하기로 하셨다. 하나님께서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그를 사용하였기에 사도 바울의 사역은 여전히 오늘날에도 그 열매를 볼 수 있다. 사도행전을 읽다가 바로 사울의 회심을 보고 하나님을 섬길 용기를 얻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오늘 사도 바울의 삶의 초반에 있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그가 회심 이전보다 그가 하나님께 은혜로 택함을 얻어 변화된 후에 하나님께서 그를 얼마나 놀랍게 사용하심으로 세상에서 그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었는지 보고자 한다.

우리가 바울을 보면 그는 마치 뛰어난 성인 부류의 하나에 속한다고 생각하고 싶은 정도다. 주님께서 바울을 사용하신 것처럼 우리를 사용할거라고 조금의 가능성도 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며 혹은 주님께서 전혀 우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쉽다. 우리 모두는 주님의 사역에서 주님께 쓰임받기에 부족하고 합당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만일 우리가 그분께 가용한 상태가 되고자 한다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으시고 또 그렇게 하실 것이라는 점을 보고자 한다.

우리 중 과연 하나님께서 내 삶을 그분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위대한 사도 바울의 삶을 조금 살펴보면서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며 주님을 섬기는 길에서 장애물들로 보일만한 것들을 보고자 한다. 그 장애물들이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 앞에서는 그것을 극복하는데 그분께서는 아무 문제도 없으시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의 삶을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이 우리의 간단한 답이다. 이 구절들을 통해 바울의 삶과 사역에 대해 보면서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지 그 이유를 보겠다.

I. 우리의 과거의 상황은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에 대해 간증한 것을 토대로 그는 크리스천들을 죽이고자 하는 권한을 얻고자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하던 죄가 있었다.

행 22:3-5 진실로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도시 다소에서 태어났으되 이 도시에서 가말리엘의 발밑에서 자라며 조상들의 율법의 완전한 방식에 따라 가르침을 받았고 이 날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을 향해 열심이었노라. 4 내가 이 길을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자들과 여자들을 다 결박하여 감옥에 넘겨주었노니 5 대제사장과 장로의 신분을 가진 모든 사람들도 나에 대해 증언하느니라. 내가 또한 그들로부터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받아 다마스쿠스로 가서 거기 있던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을 받게 하려 하였노라.

행 26:9-11 참으로 내가 나사렛 예수님의 이름을 대적하는 많은 일을 해야 함이 마땅한 줄로 스스로 생각하고 10 예루살렘에서도 그 일을 행하여 내가 수제사장들로부터 권한을 받아 성도들 중에서 많은 사람을 감옥에 가두며 또 그들을 죽일 때에 그들을 대적하는 목소리를 내었고 11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그들에게 형벌을 내리며 그들로 하여금 억지로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였고 또 그들을 향해 심히 격분하여 낯선 도시들에까지 가서 그들을 핍박하였나이다.

디모데에게 쓴 첫 번째 서신을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과거를 두고 언급한 적이 있다. “내가 전에는 신성모독하는 자요, 핍박하는 자요, 해를 끼치는 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얻게 됨은 내가 믿지 아니하는 가운데 알지 못하고 그것을 하였기 때문이라.”(딤전 1:13) 바울은 자신의 과거의 전력에 대해 말한다. 그는 살인자였으며 그는 주 예수님을 대적하던 반역자였다. 종교적으로 그는 시샘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지만 내적으로 그는 지상을 살아왔던 그 어떤 사람들 만큼이나 사악함 그 자체였다. 행 7:58에서 그는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 동의하여 그 설교하던 집사 스데반을 죽이는 자들의 옷을 보관하였다. 그는 정말 사악한 사람이었지만 이것이 주님의 은혜와 구원하는 능력에는 어떤 장애물도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되었다. 바울이 예수님을 자신의 마음속에 영접하였을 때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원히 변화되었다!

우리의 과거가 주님을 섬기는 일에서 우리의 미래에 어떤 장애가 되지 못함을 배울 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이전에 어떠한 삶을 살아왔던지 간에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분께서 여러분의 혼을 구원하셨을 때 여러분의 과거의 죄들을 말끔히 제거하셨기 때문이다! 거듭나는 순간에 여러분은 새로운 시작을 시작한 것과 같다. 사실 성경은 우리가 “새로운 탄생”으로 다시 태어났음을 말한다(요 3:3-7).

우리의 과거의 행적은 세 종류가 남아있다. 먼저 우리의 생각 속에 여전히 과거의 기록이 있다. 두 번째 나를 알고 지내던 사람들의 생각 속에 나의 과거의 기록이 있다. 세 번째 사탄이 나의 과거의 기록을 갖고 있다. 그는 언제든지 우리의 과거를 들추며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나의 과거의 기록들 중 어디를 가져와 기억하든지간에 혹은 나의 친구들이나 가족들이나 이웃이나 동료들이 나의 과거를 기억하든지간에 혹은 사탄이 나의 과거를 가져오든 지간에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과거를 다 잊으셨고 그분께서 나를 사용하시는데 그 과거는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시 103:12, 사 43:25, 고전 6:9-11, 요일 1:7).

성경에는 사도 바울말고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사용하시는데 그들의 과거가 더 이상 장애가 되지 아니하는 예들이 존재한다.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기까지 하였고 그 중 마지막은 저주까지 하였지만 더 이상 주님은 그 점을 기억하지 않으신다. 모세는 살인자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해 그를 사용하셨다. 삼손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죄를 범하였지만 여전히 그를 사용하셔서 그를 부르신 목적을 성취하셨다. 아브라함의 삶은 많은 실패들로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그를 사용하셨다. 야곱은 속이는 자였으며 여러 번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르지 않았지만 주님은 인내를 가지고 기다리시고 그를 변화시키셨으며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에 대한 대언의 말씀을 전달하게 하셨다.

이 외에도 증인들은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이 정도도 충분하리라 여겨지며 주님께서는 과거에 실패로 가득하고 또 죄들이 있다 하여도 주님께 진심으로 돌아선 자들을 과거에도 그렇고 오늘날에도 그렇고 미래에도 여전히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실 것이다.

II. 우리의 현재의 환경들은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사도 바울은 크리스천들을 찾아 그들을 체포해서 죽음에 넘겨주려고 다마스커스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의 마음은 증오로 가득하고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한 모든 것들을 완전히 파괴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를 사용하실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현재의 상황들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가 짊어지는 모든 짐들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였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택하시던 대부분의 제자들은 글을 배우지 못하던 어부들이었으며 그 중 베드로와 요한은 성경의 일부를 기록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제자들은 믿음이 약한 자들이었으며 자신을 내세우고 교만으로 가득한 자들도 있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 모두를 사용하시는데 제약이 없으셨다. 그것들은 주님께는 어떤 장애도 되지 못하였다. 그분께 유일한 제약은 우리가 그분께 우리 자신을 드리지 아니하는 제약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그분께 우리 자신을 내어 드릴 때 주님은 우리의 삶속에서 동일한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다.

성경에는 이것을 증명하는 예들이 가득하다. 모세가 주님으로부터 사역으로 부름을 받았을 때의 나이가 팔십 세였다(출 7:7). 그는 나이 말고도 다른 장애물들이 있었다. 그는 말을 잘하지 못하였으며(출 4:10) 두려움이 마음에 가득하여(출 4:1) 주님께서 그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려는 그분의 계획에 절대적으로 반대하였다(출 43:13). 하지만 그 모든 장애물에도 주님께서 그 사람을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으셨다. 에훗은 왼손잡이였는데 그것은 그가 오른손에 장애를 가지고 있음을 돌려 말하고 있는 것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주님은 에훗을 통해 이스라엘을 속박에서 건져내셨다. 기드온은 겁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주님의 영은 그를 용사가 되게 하셨다. 우리가 가진 어떤 장애물일지라도 주님께는 무거운 짐이 아니며 또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이고 사라가 90세였을 때에 그들은 이삭이라는 축복을 얻었다. 주님은 약속을 믿는 믿음을 우리가 소유하기를 원하신다.

III. 우리의 개인적인 특성은 장애물이 되지 않는다.

사울은 주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서 두려움을 받던 대상이었다. 그의 회심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졌지만 크리스천 지도자들을 찾아내고자 하는 어떤 속임수로 고안된 계획으로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사도들을 만나고자 하였을 때에도 바나바가 그와 함께 가서 바울을 리더들에게 소개해야만 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이 사람을 사용하셔서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일하셨다.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그는 개성이 매우 강한 사람이었을 뿐 아니라 사역에 쓰일만하다고 여겨질 만한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어떤 면에서 고지식하고 지식은 뛰어나나 몸도 약할 뿐 아니라 말이 서투른 사람이었으며(고후 10:10) 무엇보다도 시력이 정말 좋지 못했다(갈 4:13-14). 그를 직접 보면 카리스마가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 극복해야 할 개인적인 많은 장애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그를 쓰시는데 문제가 없으셨고 오히려 그의 연약함을 이용하셔서 그분의 강함을 보이셨다.

만일 우리가 자신을 뛰어난 다른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우리는 날뛰는 말에 올라타 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계속적으로 안정을 얻지 못하고 언제든지 우리는 나가떨어질 것만 같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개성과 성격이 하나님께서 나 같은 자를 쓰시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이들은 기드온이나 다른 주님의 사람들처럼 소심한 성격을 탓할지 모른다. 베드로와 같이 즉흥적인 성격이 강하거나 요한처럼 불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여도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어리석고 약한 것들을 사용하시어 자신의 큰 일들을 수행하신다. 하나님의 일들은 자원하는 자들의 손을 통해 진행된다.

마찬가지로 성경에는 이와 같은 예들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는 말이 둔해진 노인인 모세를 들어 하나님의 손처럼 사용하셨다. 주님은 연약하고 섬세한 성품을 가진 에스더라 이름을 가진 한 여성을 들어 쓰셔서 유대인 민족이 말살당하는데서 건져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젊고 감수성이 풍성하여 시적 감흥이 넘치는 한 청년을 들어 쓰셔서 이스라엘 민족의 왕이 되게 하시고 그들을 먹이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삶의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인 열 두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께서도 다양한 삶을 경험하셨다. 그분의 기적적인 탄생을 믿지 아니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출생을 의심하였고 부정한 자로 보았을 뿐 아니라 갈릴리 출신이라는 점은 유대인들에게 배척당하고 쓸모없고 무식한 사람들로 여겨지는 부류로 여겨짐을 받았다. 종교지도자들은 그분께서 사탄의 쓰임을 받는다고 모함하였다. 그런 모든 일들을 겪음에도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살아간 어떤 사람들보다도 더 하나님의 쓰임을 받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이 있겠는가?

우리가 어디 출신이든지간에 어떤 성격을 가진 사람이던지 간에 삶의 어떤 문제 가운데 놓여 있던지 간에 혹은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혹은 어떤 교육을 받았던지 간에 혹은 사람들에게서 배척을 받는 상황이던지 간에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리고 스스로를 주님께 쓰시기에 가용한 상태로 둔다면 주님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여러분을 여러 가지 형태로 사용하실 수 있으시다. 큰 것부터가 아니라 작은 것부터 헌신하자. 지극히 작은 일에 신실한 자는 큰 일에도 신실한 법이다.

IV. 우리의 사적인 염려도 장애물이 되지 못한다.

고린도후서 12장 7-9절을 보면 사도 바울에게는 사적인 염려가 있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이 육체적인 연약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용하시는데 문제가 없으셨으며 이 구절에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이 더 큰 능력을 얻게 되었다고 말한다!(고후 12:10)

바울과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에 연약하여 그리스도의 대의를 위해 많은 것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가 강해야 할 필요를 못 느끼신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성령님께서 자신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부여하셔서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자신의 종을 필요로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의지하는 자들이 아닌 전적으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성령님의 도우심을 바라는 자들을 찾으신다.

마찬가지로 성경은 이러한 자들의 예들이 존재한다. 한나는 불임으로 아이를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전적으로 매달리며 그분의 은혜를 구하고 주님께서 주실 아이를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드릴 것을 약속하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무엘을 주셔서 이스라엘의 뛰어난 영적 지도자가 되게 하셨다. 다니엘이 소년이었을 때에 바빌론으로 끌려와서 낯선 땅에 있을 때에도 그는 믿음으로 하나님만을 바라보았고 그는 바빌론의 느브갓네살 왕과 여러 왕들 앞에 서서 지혜를 주는 자가 되었다. 젊은 처녀였던 마리아는 하나님의 천사가 그녀에게 한 아이를 그녀의 태에 잉태하게 하실 것이라는 계획을 알리셨을 때 자신을 희생하여 순종함으로 나아왔으며 그녀는 세상에 메시야를 가져오는 영광을 얻었다.

어떤 사람들은 외로움과 싸우며 어떤 사람들은 열등감과 싸우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눈으로 매일 사악한 일들을 견디며 살아가야 하며 어떤 이들은 자신이 부접한 자라고 여길지라도 언제든지 주님께 자신을 내어드리기로 결정하고 그분께 믿음으로 자신을 내어드릴 때 우리가 언급할 수 있는 어떤 종류의 연약함이나 혹은 장애물이 된다 하여도 주님께는 우리가 가진 문제들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함 가운데서도 여전히 자신의 강함을 보이실 수 있으시다. 한 단어가 이 모든 놀라움을 가져오는 변화를 일으킨다. 바로 “내어 드림”(surrender)이다. 우리는 과연 전적으로 주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고자 하며 그분의 뜻에 우리의 삶을 의탁하고자 하는가?

응답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의 삶을 자신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수 있으신가? 그러하다. 성경은 그러한 사람들의 예로 가득하다. 그러나 삶의 놀라운 변화는 우리 자신을 주님께 “내어 드릴 때” 일어나게 된다. 그 첫 발걸음은 말씀에 순종함으로 침례에서 시작하여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뜻을 먼저 구함으로써 행해진다. 세 가지 질문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여러분은 진정으로 구원받았는가?” 침례받았다고 의존하지 말며 진심으로 마음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구주와 주님으로 모시었는가?

“여러분은 전적으로 주님께 내어 드렸는가?” 제단에 드려진 희생물처럼 우리 자신을 그분의 뜻에 내어 드리는가?

“여러분은 주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도록 가용한가?” 삶의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드려질 수 있는가?

행9.1-6.txt · 마지막 수정: 2019-07-28 15:24 작성자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