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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관하여

이 글은 정리가 되는 대로 다시 올라갈 것입니다.

저번 주 페이스북에 저를 두고 윤 형제님이 쓴 글 두 편이 올라왔습니다. 사실 무응답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합니다. 논쟁으로 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것도 좋은 답은 아닌 것 같아 간단하게 답변하고자 글을 씁니다. 사실 이미 글을 쓰긴 했지만 처음 글은 감정이 많이 실린 글이 되었고 따라서 올리지 않고 무응답으로 하려 했던 겁니다.

저를 두고 올라온 글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저는 캘빈주의자가 아니지만 창세 전 선택(구원 예정)을 믿는다.’**는 말장난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것은 구냥 [우리]이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란 말씀을 몰라서 빼는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의도적 왜곡을 한다. 말씀을 슬쩍 빼고 왜곡하면서도 잘못이나 오류를 시인하거나 회개할 줄 모른다.”

저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저는 칼빈주의자가 아니지만 창세전 선택을 믿는다.”라고 했기 때문이죠. 다만 “구원 예정”이란 말은 하지도 않았는데 의도적으로 붙였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저는 칼빈주의자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에 대해서는 믿습니다. 이 “선택”에 대해서는 조금 있다 아래에서 다룰 것입니다. 또 “그분 안에 있는 우리”라는 제목으로 올라온 글에도 이렇게 써 있습니다.

“이 글은 구원 예정과 창세 전 선택을 믿는 목사님을 위해 쓴 것이다.”

역시 저를 두고 한 말입니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형제님으로부터 받은 글이니 저도 정리하는 차원에서 글을 쓰려 합니다. 이에 대해 답변을 달더라도 저는 답글을 올릴 마음이 없습니다. 이런 글을 쓸려면 낮에는 일을 해야 하므로 밤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양떼를 돌보는 일이 더 중요하기도 합니다.

먼저 저는 논쟁을 원치 않습니다. 논쟁은 내가 높아지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것일 뿐 내 영적 유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걸 보았습니다. 특히 처음 논쟁이 되었을 때 주변에 계신 분이 “논쟁”을 하고 있는지 물어보았을 때, 페이스북이 모두가 읽을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고 판단한 저는 조심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답글을 달지 않으려 노력했고 그냥 제 페이스북 공간에 글을 올리고자 했습니다.

제가 먼저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나누는 모든 대화에는 상대방과 사용하는 단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구원받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압니다. 시시콜콜하게 “어디서 구원 받았다는거야?” 혹은 “구원의 의미는 많은 데 어떤 구원을 말하는 것이지?”라고 묻지 않습니다. 이것은 “구원”에 대한 서로간의 “보편적 인식”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잃어버린 자들”이라 언급할 때에도 우리는 그 의미에 대해 “보편적으로 인식하여 받아들”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들이 사용하는 어떤 단어에 대해 일일이 주석을 달거나 일반적인 단어의 의미가 특정적으로 사용되었을 때 그 의미를 설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있는 보편성을 믿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그분을 배척하는 사람들과 대화하실 때 그것이 논쟁처럼 보이는 상황일지라도 단어의 사용에 있어서 사람들이 모두 이해하는 “보편적 인식”하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논쟁을 좋아하거나 그것에 몸이 배인 사람들은 이 “보편적 인식”을 무시할 때가 있습니다. 논쟁적이거나 비판적인 영을 소유하게 되면 더욱 그런 성향이 강해집니다. 이것은 논쟁에서 상대방보다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였다는 인식을 심어주거나 혹은 논쟁의 주제가 되는 것에서 생각을 분산시키려 하는 의도에서 많이 사용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은 이단들은 이런 방식을 취함으로써 자신들이 일반 장로교회 사람들보다 자기들이 성경 지식이 많다는 인식을 주기 위해 “보편적 인식”을 무시하는 주장을 폅니다.

이번에 논쟁이 된 “우리”라는 단어나 “선택”이나 “미리 아심”이란 단어들에 대해서도 그러합니다. 윤 형제님께서 제가 에베소서 1:4을 언급하면서 “의도적으로 왜곡”하였다고 말하면서 이것을 설명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의도적 왜곡을 한 적도 없으며 그 부분에 대해 잘못되게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형제님이 “우리”라는 단어에 대한 “보편적 인식”을 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또한 제가 형제님과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형제님이 왜 “잘못이나 오류를 시인하거나 회개할 줄 모른”다고 말하는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을 뿐입니다. 형제님이 그런 권한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장 단순하게 설명하면 이와 같습니다. 에베소서는 누구에게 기록되었는가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미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자들을 대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또한 엡 1:4에서 “우리”라고 말할 때 그 대상은 “바울”을 포함한 에베소 성도들입니다. 그것은 엡 1:4을 읽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인식합니다. 그것을 두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라고 하지 않고 “우리”라고 했다고 해서 “의도적인 왜곡”을 했다고 말하는 것은 논쟁을 좋아하는 사람의 방법일 뿐입니다.

또한 형제님이 사용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라는 표현도 잘못된 것입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라고 해야겠죠. 형제님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지적하신대로, “안에서”와 “안에 있는”은 다른 의미를 전달합니다. 형제님은 저의 말은 부정하면서 스스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그분 안에 있는 우리’**를 택하셨다.”

이것은 “창세전에”와 “그분 안에 있는 우리”가 시제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을뿐더러, 만일 “창세전에”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창세전에”로 해석한다면 제가 말한 바와 동일한 말이 되어버렸습니다. 오히려 더 나아가 창세전에 그분 안에 우리가 있다고 말하는 셈이 된 겁니다.

에베소서 1:4을 다시 자세히 봤으면 합니다.

엡 1: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엡 1:4 According as he hath chosen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that we should be holy and without blame before him in love:

“우리”라는 단어는 이미 에베소서 1장 전체에 나온 단어들을 찾아보면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의미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저는 형제님이 논쟁을 좋아하여도 상관없지만 적어도 “보편적 인식”을 무시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것은 결국 비판적이고 논쟁적인 영을 소유한 사람으로 밖에 인식되지 않을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4절에서 말하는 바를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이것은 우리를 택하신 목적입니다.

“세상의 창건 이전에” 이것은 우리를 택하신 시점을 말합니다.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이것은 우리를 택하신 그 방향이 어디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그리스도 밖에 있도록 택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또한 그분 즉, 그리스도의 목적과 계획을 위해 택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건 1장 전체를 통해 “그분 안에서” 혹은 “그리스도 안에서”가 나오는 부분을 다 읽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목적과 계획”이라고 했지만 사실 그 의미는 광대합니다. 우리말로는 표현하기 힘들겠죠. 그분의 생각과 의도와 사랑과 영광 등 이 모든 것들이 포함될 테니까요.

자, 그렇다면 형제님이 쓴 글을 보십시오.

“주님은 믿는 자(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택하셨지 믿을 자(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자)를 택하신 것이 아니다.”

이것은 사실 말이 안 됩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에베소서 1:4절에서 택하신 시점은 “세상의 창건 이전”입니다. 그 때는 우리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때입니다. 다만 시간의 한 시점에 우리는 존재하게 되었고 그 뒤 예수님을 믿게 된 이후에 하나님의 계획을 알았을 뿐입니다. 형제님의 이 말을 그대로 해석하면 다음과 같겠죠.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택하셨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왜냐면 창세전이니까”가 되겠죠. 그렇게 되면 형제님의 글은 완전히 뒤죽박죽인 글이 된 셈입니다. 형제님이 쓴 글을 다른 사람이 썼다고 생각하고 저를 비판하는 그 마음으로 그 글을 대하여 읽어보십시오. 그리고 한번 깊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선택”이란 단어에 대한 비판도 그러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편적 인식”을 무시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의미의 “선택”이 사용됩니다. 그건 우리가 성경을 읽으면서 문맥의 의미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문맥상 따지면 “은혜의 선택”도 있고 “그릇으로 사용하기 위한 선택”도 있고 “미리 아심에 따른 선택”도 있고 “왕으로 세우기 위해” 선택하는 것도 있고 “성경을 이루기 위해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을 제자로 선택”하는 것도 있는 만큼 너무나 많은 의미의 선택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문맥을 통해 그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을 말할 때는 일반적인 선택의 의미에서 “구원과 그 이후의 영광”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라는 것을 “보편적인 인식”을 통해 받아들입니다.

성경은 이 부분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엡 1:4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엡 1:4은 우리를 선택하신 시점이 언제인지를 말합니다. “세상의 창건 이전에”. 선택의 시간상 시점은 “세상의 창건 이전에” 행해졌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선택함을 얻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점입니다.

골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생각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입고

“하나님의 선택”이란 말이 구원받은 자들과 연관하여 사용되었음을 보십시오. 이것을 “선택”이라는 보편적인 말로 대체를 해서 설명하는 것은 오히려 의도적인 왜곡일 뿐입니다.

살전 1:4 사랑하는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너희를 선택하셨음을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그 시점이 언제냐는거죠. 만일 “창세전”이라면 “구원받을 여러분을 창세전에 선택하셨다”라는 말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요? 시제를 맞추어 말해보기 바랍니다.

살후 2:13 그러나 [주]께 사랑받는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로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하나니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기 때문이라.

하나님께서 언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까? “처음부터” 또한 우리를 선택하신 결과가 어떻게 됩니까?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딤후 2:10 그러므로 내가 선택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견딤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라.

이 구절은 설명할 부분이 복잡한 면이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오해의 소지가 커질 수 있으므로 일단 제하겠습니다.

딛 1:1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성품을 따르는 진리를 인정함에 따라

하나님의 선택하심과 관련하여 “믿음”이 사용되었습니다.

벧전 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도록 선택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이 구절을 문맥에 맞게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선택을 받아,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른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선택은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무조건적인 선택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이 무엇인지를 말하실 수 있는 분께서 우리에 대해 미리 아심으로써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택을 한 결과는 어떤가요?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른 자들” 즉, 구원과 연관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또한 선택하심에는 구원과 관련한 선택이 존재하는 것도 문맥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으로 깨달을 수 있습니다.

벧전 5:13 너희와 함께 선택 받은 바빌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

벧후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열심을 내어 너희를 부르신 것과 선택하신 것을 확고히 하라. 너희가 이것들을 행하면 결코 넘어지지 아니하리니

심지어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를 부르신 것과 선택하신 것을 확고히 하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구원받으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들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였나요?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습니다.” 언제 선택했습니까? “창세전에” 선택하셨습니다. 선택하신 그 결과는 어떻게 됩니까?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을 통해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살후 2:13은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단순한 진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어느 것이 더 쉽습니까? 아니면 “주님은 [창세전에] 믿는 자(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택하셨지 믿을 자(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자)를 택하신 것이 아니다.” 이 말이 더 단순하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신 것이 무조건적으로 선택하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른 것입니다. 또한 그분이 선택하시고 우리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심에 있습니다. 즉, 우리의 구원은 그분의 부르심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성경은 여러 차례 “우리를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는 즉,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 말합니다.

롬 8:29-30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언제 우리를 미리 아셨을까요? 내가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 아니면 1시간 전? 아니면 하루 전? “창세전”에 주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아직 우리가 창조되지 아니한 그 때에 주님은 우리를 미리 아셨습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 구절을 보면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예정”과도 관련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정”은 구원받고 난 후의 변화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구원”과 완전히 별개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예정하셨고 그들을 “구원받도록” 부르셨고 그들을 의롭다 하셨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예정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원”이 와야 합니다. 구원은 그 시작입니다.

엡 1:5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6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셨느니라.

“예정”의 목적은 “자신의 은혜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심에 있습니다. 예정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원”이 먼저 와야 합니다.

엡 1:11 모든 것을 자신이 뜻하신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에 따라 우리가 예정되어 또한 그분 안에서 상속 유업을 얻었으니

우리가 예정에 따라 상속 유업을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원”이 먼저 와야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구원받을 자들을 그분의 미리 아심을 따라 창세전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단순한 진리가 아니면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왜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부를까요? “믿기 전까지는 그가 누구이든지 간에 잃어버린 자요, 버림받은 자”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고 해서 그것이 시간의 시점에서 선택한 그 순간에 구원의 결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님은 창세전에 택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미리 아심 가운데 선택하신 그들이 실제로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들을 불러야 합니다. 만일 주님이 부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됩니까?

다윗이 그일라에 있었을 때에 사울이 그를 잡으러 내려와 그일라를 에워싸려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주님께 물어 사울이 내려올까요? 물었을 때 주님은 “그가 내려오리라.”(He will come down)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윗은 그일라 사람들이 자신을 사울에게 넘겨줄까요? 라고 물었을 때 주님은 “그들이 너를 넘겨주리라”(They will deliver thee up) 라고 답변하셨습니다. 다윗이 그일라를 떠나자 사울은 가기를 그쳤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거짓말을 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윗의 선택에 따라 그 결과가 달라질 뿐입니다. 만일 다윗이 그일라에 계속 있었다면 사울은 내려왔을 것이고 그일라 사람들은 다윗을 넘겨주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주님이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셨는데 우리를 부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어느 누구도 스스로 하나님을 찾아 나서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를 주셔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으며 그렇게 되면 주님의 미리 아심은 틀린 것이 됩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주님의 미리 아심은 정확하며 또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누구든지”라고 말하나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시면서 왜 그럴까요? 이스라엘 역사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이스라엘 역사는 하나님께 알려진바 되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주님을 거부할 것도 이미 아셨고 대언자들의 글들에 여러 차례 그것을 예언하셨습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시고 또한 그들이 믿도록 촉구하셨습니다.

롬 10:21 오직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가 종일토록 내 손을 내밀어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백성을 향하게 하였노라, 하느니라.

만일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부르지 아니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제 생각에 그렇게 되면 심판날에 사람들은 외칠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믿지 아니했던 것은 주님이 나를 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내가 복음을 듣지 아니했기 때문이다.” 라구요. 그렇게 되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실 수 있겠습니까?

롬 3:4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참으로 [하나님]은 진실하시되 사람은 다 거짓말쟁이라 할지어다. 이것은 기록된바, 이로써 주께서 주의 말씀하신 것에서 의롭게 되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시리이다, 함과 같으니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시지만 그분의 미리 아심에 따라 그들의 운명을 미리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역사에서 드러날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우리는 파라오를 통해 그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롬 9:21-24 토기장이가 같은 덩어리의 진흙으로 한 그릇을 만들어 존귀에 이르게 하고 다른 하나를 만들어 수치에 이르게 할 권한이 없겠느냐? 22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보이고 자신의 권능을 알리기 위해 파멸시키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에게 심히 오래 참으심으로 인내하시고 23 이로써 영광에 이르도록 자신이 미리 예비한 긍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려 하셨을진대 무슨 말을 하리요? 24 이 그릇들은 곧 우리니 즉 그분께서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니라.

로마서 9장이 우리의 구원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나요? “이 그릇들은 곧 우리니 즉 그분께서 유대인들 중에서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 중에서도 부르신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 선택은 언제 있었습니까? “창세전”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창세전에 선택한 사람들을 부르셨습니다. “선택에 따른 하나님의 목적이 오직 부르시는 분으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함입니다.” 로마서 9장을 잘 이해하셨으면 합니다. 야곱과 에서가 민족을 대표한다고만 생각하고 다른 구절들도 덮지 말고 그 뒤에 나오는 구절들도 깊이 생각해보길 바랍니다.

election_of_god.txt · 마지막 수정: 2017-06-20 09:04 (외부 편집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