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비유로 내 입을 열어 옛적부터 있던 은밀한 말들을 말하리니
시 78:2-3 내가 비유로 내 입을 열어 옛적부터 있던 은밀한 말들을 말하리니 3 그것들은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말해 준 바라.
이 구절은 예수님께서 하늘의 왕국의 비유를 말씀하실 때 인용되었던 부분이다.
마 13:34-35 예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무리에게 비유로 말씀하시고 비유가 없이는 그들에게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니 35 이것은 대언자를 통해 말씀하신 것을 성취하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내가 비유로 내 입을 열어 세상의 창건 이후로 은밀히 간직된 것들을 말하리라, 하였느니라.
이 구절을 인용하여 “무료성경신학원” 신천지에서는 성경은 비유로 되어 있으며 그 비유를 아는 것은 자신들 뿐이라는 식으로 말한다. 그런데 그들은 “비유”가 주어지는 목적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비유를 풀어내는 방식마저도 완전히 성경에서 떠났다. 최근 아는 분이 신천지 “추수꾼들의 설교 동영상” 링크를 보내주어서 잠깐 앞에만 들어보았다. 어떤 여자가 강단에서 설교하고 있었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그들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에서 나오는 밭을 두고 자기들의 교회가 아닌 다른 장로교회들을 그들의 밭으로 여겼다. 그리고 예수님이 씨를 뿌린 것을 그들이 거두기 위해 그들이 그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하도 기가 차 더 이상 들을 수 없어 그냥 종료시키고 말았다. 그런데 진리를 분별하지 못하여 신천지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사탄의 역사는 더욱 교활하고 속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비유를 주신 목적이 깨닫지 못하게 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풀 수 있는 자가 아니면 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전혀 그렇지 않다. 비유는 듣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그것은 듣는 사람이 잘 깨닫도록 함에 있다. 종종 우리도 그것을 사용하며 시에서도 그것을 사용한다.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말했을 때 그것은 내 마음의 상태가 평온하고 안정적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비유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즉 비유는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함에 있다. 잠언은 많은 비유로 되어 있다. 그런데 잠언의 시작은 이렇게 말한다.
잠 1:1-6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의 잠언이라. 2 이것은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들을 파악하게 하고 3 지혜와 정의와 판단의 공의와 공평의 훈계를 받게 하며 4 단순한 자에게 민감함을 주고 젊은 자에게 지식과 분별을 주기 위한 것이니 5 지혜로운 자는 듣고 학식을 더할 것이요, 명철한 자는 지혜로운 권고들을 얻어서 6 잠언과 해석과 지혜로운 자들의 말들과 그들의 은밀한 말들(dark sayings)을 깨달을지니라.
시편기자도 무어라 말하는가? “내가 비유로 내 입을 열어 옛적부터 있던 은밀한 말들(dark sayings of old)을 말하리니 3 그것들은 우리가 들어서 아는 바요, 우리 조상들이 우리에게 말해 준 바라.” 비유는 감추어진 것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다. 또한 “은밀한 말들”을 두고 오해하는 바가 있다. 은밀한 말들이란 “깊은 이해가 필요한 말들”이다. 어떤 말들은 난해하여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런 말들을 일컫는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의 신비를 말씀하시고자 비유를 쓰셨다. 신비란 무엇인가? “아직 계시되지 않은 진리”이다. 이제 그 신비를 주님께서 계시하시는데 그것을 비유로 말씀하심으로써 듣는 자로 하여금 그것을 더 잘 이해하도록 함에 있다. 그런데 비유에는 한 가지 목적이 더 있다. 비유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즉, 위에서 “내 마음은 호수다.”라고 했을 때 비유는 “호수”이고 그 대상은 “내 마음”이다. 즉, 비유의 대상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된다. 바로 거기에 비유의 난해함이 있다. 주님은 하늘의 왕국과 하나님의 왕국의 신비를 비유로 말씀하실 때 그 비유의 대상이 무엇인지를 다른 사람들에게는 감추셨다. 바로 거기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왜 주님은 그 대상을 감추셨을까?
마 13:10-16 제자들이 나아와 그분께 이르되, 어찌하여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시나이까? 하매 11 그분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니라. 12 있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될 터이나 없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3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14 이사야의 대언이 그들 안에서 성취되었으니 이르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눈을 감았나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느니라. 16 그러나 너희 눈은 보므로, 너희 귀는 들으므로 복이 있도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 즉, 비유를 말씀하시나 그 대상을 밝히지 아니한 이유는 “하늘의 왕국의 신비들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허락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실 주님은 그 전에도 비유를 사용하셨다. 그전에 사용한 비유는 사람들이 그 대상이 무엇인지를 알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비유에 대해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11장을 보자.
마 11:16-17 ¶ 그러나 내가 이 세대를 어디에 비유할까? 그것은 마치 장터에 앉아 자기 동무들을 부르며 17 이르기를, 우리가 너희를 향해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아니하였고 우리가 너희를 향해 애곡하여도 너희가 애통하지 아니하였다, 하는 아이들과 같도다.
주님은 비유로 말씀하시되 그 대상이 무엇인지 분명히 보여주셨다. “내가 이 세대를 어디에 비유할까?”
마가복음 3장을 보자.
막 3:22-27 ¶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서기관들은 이르되, 그가 바알세붑에 사로잡혀 마귀들의 통치자를 힘입어 마귀들을 내쫓는다, 하거늘 23 그분께서 그들을 불러 비유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탄이 어찌 사탄을 내쫓을 수 있겠느냐? 24 또 만일 어떤 왕국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왕국은 서지 못하고 25 만일 어떤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은 서지 못하며 26 만일 사탄이 자기를 대적하여 일어나 분쟁하면 서지 못하고 종말을 맞느니라. 27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는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의 재산을 노략하지 못하리니 결박한 뒤에야 그가 그의 집을 노략하리라.
27절의 “강한 자”는 누구인가? 이미 주님이 그 대상을 분명히 밝히셨다. “사탄”이다. 그러나 마태복음 13장에서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그 대상이 무엇인지 그분의 제자들을 제외하고는 밝히지 아니하셨다. 그것은 영적원칙을 위한 것이다. “있는 자는 누구든지 받아서 더욱 풍성하게 될 터이나 없는 자는 누구든지 자기에게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주님은 자신을 메시야로 거부하는 사람들의 영적인 상태가 더 흑암으로 가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회개하지 아니하는 죄악에 대해 결국 성령의 회심의 역사를 멈추고 오직 형벌만이 기다리도록 하기 위함에 있다. 이것은 성령님을 모독하는 것과 관련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니라.”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도 못하는 것인가?” 아니다! 이미 그들의 마음의 상태가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비유를 사용하심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더 닫고자 함에 있는 것이다. 이단들은 이것을 거꾸로 푸는 것을 종종 들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대언”을 인용하였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5 이 백성의 마음은 무디어지고 그들의 귀는 듣기에 둔하며 그들은 눈을 감았나니 이것은 언제라도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내게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이사야 6장에서 인용하였다.
사 6:8-12 또한 내가 [주]의 음성을 들었는데 이르시기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까? 하시더라.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라. 9 ¶ 그분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말하기를,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하며 10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매 그분께서 대답하시되, 도시들이 피폐하게 되어 거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땅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며 12 또 {주}가 사람들을 멀리 옮겨서 이 땅 한가운데에 버림당하는 일이 심히 많을 때까지니라.
이사야 6장에서 주님은 이사야를 보내려 하신다. 그전에 주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말씀하셨다. “참으로 너희가 듣되 깨닫지 못하고 참으로 너희가 보되 알지 못하느니라.” 그들은 깨닫고자 하는 마음 가운데 있지 아니하다. 즉, 이사야는 메시지를 전하여도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아니하고 회심하지 아니할 대상에게 전할 것을 알았을 것이다. 결국 주님은 이사야의 설교를 통해 회개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심판의 때까지 완전히 닫음으로써 그들의 죄악에 대한 댓가를 받게 하시려 한다. “이 백성의 마음을 우둔하게 하고 그들의 귀를 둔하게 하며 그들의 눈을 닫을지니 이것은 그들이 그들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회심하여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하시기에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매 그분께서 대답하시되, 도시들이 피폐하게 되어 거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땅은 완전히 황폐하게 되며 12 또 {주}가 사람들을 멀리 옮겨서 이 땅 한가운데에 버림당하는 일이 심히 많을 때까지니라.”